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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조력사 입법화와 웰다잉의 조건


편안하고 품위 있는 죽음, 즉 웰다잉(well dying) 이슈가 다시 불거질 것 같다. 이번엔 조력 죽음이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사 조력 자살을 합법화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이번 주에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조력사(死)는 말기 환자가 의식 있는 상태에서 의사가 처방해준 약물을 직접 복용하거나 주입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임종 방법이다.

임종 과정의 환자에게 인공호흡기 착용, 심폐소생술 등의 연명의료를 중단 혹은 유보할 수 있게 한 현행 연명의료결정법보다 한발 더 나아간 방식이다. 의원실은 말기 환자의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증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조력 존엄사법’으로 좋게 칭했지만 한마디로 의사 도움을 받아 자신의 생명을 단축할 수 있게 한 법이다.

조력사는 지금의 연명의료 유보·중단에 해당하는 소극적 안락사와 의사가 직접 약물을 주입해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의 중간 형태다. 의사 조력사나 적극적 안락사는 국내에선 엄격히 금지돼 있지만 유럽 일부 국가, 미국 일부 주 등 해외에선 허용돼 있거나 도입하려는 나라들도 꽤 된다.

이런 국제적 흐름과 맞물려 안락사에 대한 우리 국민 인식이 크게 바뀐 것도 입법화 움직임에 힘을 실어준 듯하다. 최근 서울대 의대 윤영호 교수 연구에 의하면 국민의 76.3%가 안락사 법제화에 찬성했다. 2016년 조사 때(41.4%)보다 배 가까이 상승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력사 입법화를 둘러싼 사회적 찬반 논쟁은 불가피하다. 당장 생명윤리나 종교계는 ‘살인 행위’ ‘거짓 자비’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제적 이유로 환자에게 죽음을 강요하거나 살인을 안락사로 위장하는 등의 악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너무 입법화에 매몰되다 보면 법과 규범에 의해서만 존엄한 죽음을 규정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좋은 죽음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충분히 이뤄지고 웰다잉을 위한 사회적 풍토와 인프라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의 연명의료결정법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2008년 김 할머니 사건을 거치며 좋은 죽음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담론을 거치지 않고 바로 법 제정에 착수해 탄생한 측면이 있다. 2018년 2월 시행돼 4년째 법이 작동하고 있지만 국민뿐 아니라 의료인들도 법 취지와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매년 연명의료 중단 등으로 숨지는 비율이 전체 사망자의 18%(2020년 기준)인데, 3명 중 2명은 환자 자신이 아닌 가족 동의에 의해서다. 법의 핵심 가치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 존중임에도 현장에선 여전히 겉돌고 있다.

말기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호스피스 이용률은 21.3%(2020년 기준)에 그친다. 호스피스 대상 질환이 암 등 4개로 제한적인 데다 병상 수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삶을 마무리할 임종실을 갖춘 의료기관조차 거의 없다. 종합병원급 이상 임종실 설치 의무화 목소리가 수년째 지속되지만 병원들은 수익성을 이유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더 절실한 문제는 간병 등 생애 말기 돌봄의 부재다. 간병 품앗이 대책이 서둘러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초중고와 대학은 물론 의대 및 병원 수련 과정에 죽음 교육을 포함하는 등 웰다잉 문화 캠페인 정책도 필요하다.

아울러 안락사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유행처럼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도 경계해야 한다. 나도 늙으면 그렇게 해야 되겠네 하면서 그 선택을 안 하면 눈치 받고 마치 품위를 잃는 것처럼 인식해서는 안 된다. 췌장암을 앓았던 고 이어령 선생은 치료받지 않고 인내하며 죽음을 기다렸다. 인내하며 받아들인 죽음과 내가 스스로 처단한 죽음이 같은 것인지는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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