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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레퍼런스에 대한 예의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최근 출간된 장강명의 장편소설 ‘재수사’는 22년 전 미제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한 경찰소설이자 범죄자 수기를 통해 현대 사상의 한계를 탐구하는 관념적 소설이다. 장강명은 책 뒤에 붙인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며 형사 5명의 이름을 언급했다. 또 소설에 쓴 계몽주의 비판을 위해 참고한 책 14권을 밝혔다.

외국 작가들의 책에서는 감사 인사가 서너 페이지나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빌 게이츠는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이라는 책에서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는 문장 아래 6페이지에 걸쳐 집필과 출간에 도움을 준 이들을 서술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이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라는 책에 적은 감사의 말도 보자. “의료 보험과 관련해서는 우렙 라인하르트에게서 크나큰 도움을 받았다” “딘 베이커 덕에 미국의 주택 시장에 엄청난 거품이 끼어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기술과 불평등 사이 관련성 혹은 무관련성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내용 대부분은 래리 미셸에게서 배웠다”…. 크루그먼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석학이지만 자신의 칼럼이 누구의 연구와 견해를 참고하며 작성된 것인지 상세하게 밝혔다.

책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드라마를 찍을 때 누구의 영향을 받거나 어떤 자료를 참고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창작물은 기성 작품들과 작가들, 자료들, 사람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다. 온전히 창작가 한 사람의 머리에서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는 믿기 어렵다. 창작에 사용한 자료와 인물, 아이디어를 밝힌다고 작가에 대한 경외감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두툼한 참고자료는 그 창작물의 질을 보증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창작물을 발표하면서 거기에 사용한 자료나 아이디어의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 것이야말로 문제다. 이 때문에 소모적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가수 유희열의 표절 논란이 있었다. 지난해 발표한 피아노곡이 일본 유명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곡과 유사하다는 의혹이 뒤늦게 제기됐고, 유희열은 그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두 곡의 유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기서 말한 유사성이 어느 정도인지, 그 정도의 유사성을 두고 표절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곡을 발표할 당시 사카모토의 영향을 충실하게 밝혔더라면 유사성 논란이 곧바로 표절 문제로 번지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이 드라마의 9화 ‘피리 부는 사나이’ 편에 나오는 어린이해방군 총사령관 ‘방구뽕’의 메시지가 한 놀이운동가의 책과 놀이 철학을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밝히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작가가 드라마를 쓰면서 이를 참고했다면 그 사실을 밝히는 게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이 드라마는 매회 끝 부분에 자막으로 특별 출연한 배우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중요하게 사용한 아이디어나 자료가 있다면 그렇게 감사를 표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노래나 드라마의 문제는 아닐 게다. 대중문화 분야에서는 출판물에서처럼 상세하게 자료를 표기하는 사례를 보기 어렵다. 하지만 관행이라고만 할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레퍼런스를 밝혀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어느 작가가 평생을 바쳐 일궈온 생각이나 작품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사카모토가 한 말처럼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 레퍼런스를 정확하게 밝히는 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도용이나 표절 등 불필요한 논란을 피해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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