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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복지 사각지대 해소, 삼박자 맞아야 가능하다

정익중(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과)


2014년 서울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우리나라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복지 예산을 두 배 이상 늘렸다. 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을 개정하고 사회보장급여법을 제정하는 등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다. 정부는 사회보장급여법을 근거로 단전, 단수, 보험료 체납 등 34종의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만들고 복지 수급 요건을 완화하는 등 제도를 손질했다. 하지만 잠시 잊을 만하면 또다시 생계 어려움으로 삶을 놓아버리는 비극적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국민은 안타까워하고 언론은 집중 보도하며 정부는 관련 정책들을 보완하지만 아직까지 사회안전망이 충실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세 모녀처럼 막막한 현실에 짓눌린 누군가가 또 어딘가에서 모진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대부분 신청주의에 기반하기 때문에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으면 도와줄 길이 많지 않다. 정보 약자에 속하는 저소득층은 복잡한 복지제도 내용을 잘 몰라서 혹은 관계 빈곤으로 극단적 무기력이나 고립과 단절 속에 빠져 있어 신청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신청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복지 담당 공무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적극적으로 발굴하면, 제도를 몰라 발생하는 사각지대는 일정 정도 해결할 수 있다.

정부는 사각지대 발굴을 위해 ‘찾아가는 복지’를 독려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선 만성적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공무원을 늘리자고 하면 거부감이 큰데 이는 최소한의 공적 복지 체계가 굴러가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소다. 2021년 기준 기초생활수급자가 236만여명에 달하는 데 반해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은 2만6749명에 불과해 공무원 1인당 평균 약 88명의 수급자를 담당하고 있다. 기초연금, 장애수당, 보육료 지원 등도 복지 담당 공무원의 몫이다. 극심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복지 대상자를 새롭게 발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회안전망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복지 대책이나 서비스 종류만 확대할 것이 아니라 복지 수행 인력 규모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취지는 기초생활보장이 국민의 권리라는 인식을 강화한 것인데 이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함께 이뤄지지 못해 복지 수급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복지제도 정보를 알고 있더라도 주변 시선을 의식해 신청을 거부하는 빈곤 가정이 여전히 많다. 인생의 굴곡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어려움에 닥치면 도움을 요청하고 지원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빈곤은 개인 탓만이 아니며,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라는 인식이 강화돼야 지원이 필요한 경우 긴급 복지에 마음 편히 신청할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위기 정보를 현행 34종에서 39종으로 확대하고 장기 연체자 등을 발굴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새롭게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처럼 다양한 빈곤 가구를 하나의 제도로 포착하고 지원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수원 세 모녀는 등록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달라서, 창신동 모자는 집이 있어서, 방배동 모자는 이미 수급자여서 발굴하지 못했다. 어떤 정책도 완벽할 수 없고 틈새가 생길 수 있다.

이 틈새는 결국 국민이 채워야 한다. 혹시 주변에 어려워 보이거나 오랫동안 안 보이는 분들이 계시면 확인해주길 바란다. 우리의 따뜻한 관심이 고립과 단절에 익숙했던 이웃 마음의 문을 열어 사람을 구하는 생명줄이 될 수도 있다. 당사자의 마음 편한 신청, 정부의 적극적 발굴, 주변 이웃의 관심과 지지 등 삼박자가 잘 맞아야 사회안전망이 효과를 발휘해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익중(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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