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내일을열며

[내일을 열며] 독일 녹색정치의 딜레마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지금은 전 세계로 퍼진 녹색당의 기원은 1979년 독일이다. 녹색당 강령의 핵심은 ‘환경 보존이 경제적 이익에 우선한다’와 ‘원자력 에너지 포기’다. 창당 20년이 안 된 98년의 녹색당은 사민당 연정 파트너로 집권 여당 반열에 올랐다.

독일의 경제와 사회, 정치는 녹색당이 180도 바꿔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0년대 초반부터 지어졌던 원자력발전소가 하나둘 폐쇄됐고, 2002년 독일 정부는 아예 원전 완전 폐쇄 정책을 채택한다. 이후 교대로 집권했던 독일 보수·진보 세력을 대표하는 기민당과 사민당은 이 정책을 바꾸지 않았다. 지지율 5~8%에 불과했던 녹색당이 독일 전체를 바꾸자, 유럽 각국에 녹색당이 퍼져갔고, 지금 우리나라에도 녹색당이 설립돼 있다.

독일의 원전 폐기 정책은 영국 프랑스를 제외한 나라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영토인 옛 소련 시절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도 한몫을 했다. 엄청난 양의 전력이 필요한 선진국 독일의 발전은 원자력 대신 천연가스가 도맡았다. 러시아에서 가스관을 타고 공급되는 값싼 천연가스가 있으니 별걱정이 없었던 셈이다.

2000년대 중반 지구온난화 문제가 처음 등장했을 때 녹색당은 눈을 감았다. 엄청나게 소모되는 천연가스는 휘발유 석탄 디젤보다 더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지구를 감싸는 오존층을 파괴하는 주범 가운데 하나인데도, 녹색당은 다른 대안을 내놓지 않은 채 원전 반대를 고집했다. 현재 독일의 전력에너지는 70% 이상이 천연가스 터빈 발전을 통해 생산된다.

독일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발전=천연가스’ 등식을 고집했다. 이 정책이 성공한 듯 보이자 동구권과 북유럽 등 유럽 대다수 나라가 독일 모델을 채택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갑자기 이 유럽 국가들의 에너지정책이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를 받자 값싼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도 힘들어졌다.

독일과 주변 국가에선 슬그머니 원전 재개 이슈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원전이라면 기를 쓰고 반대하던 유럽 각국의 녹색당도 별로 반대하지 않는 모양이다. 독일 중심의 유럽이 원자력을 외면하는 동안 원전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폭발과 방사능 유출 위험성이 높은 중수로 대신 경수로 발전이 대세가 됐고, 소규모 원전 모듈 발전 모델까지 도입됐다. 방사능만 제대로 관리한다면 원전은 탄소가스 발생을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환경오염은 인간이 만든 인공 물질에 의해 일어난다. 수시로 새로운 화학기술, 새로운 화합물, 새로운 인공 물질이 개발되고 전 세계로 삽시간에 퍼져간다. 인간의 생활은 한 가지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다. 처음엔 불완전한 채 등장한 기술이 단점을 고치며 발전하기 마련이다. 영구히 썩지 않는 비닐이 토양에 자연스레 흡수되는 친환경 비닐이 된 게 대표적이다.

유럽 녹색정치는 지난 40년간 환경 보존을 경제적 이익에 진짜 우선시했을까. 그들이 원전을 ‘절대악’으로만 여길 때 미국 영국 프랑스 우리나라는 가스터빈 발전소보다 더 안전한 ‘탄소가스 제로’ 원전 기술을 만들어냈다.

지금 세계가 직면한 지구온난화 문제는 개별 국가가 해결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코끼리’가 됐다.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태평양 수위가 올라가고 세계의 기후가 변화한다. 녹색당이야말로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천연가스 발전을 방치하고, 대규모 발전이 필요한 현대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소규모 풍력·태양력 발전을 고집하니까 말이다.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procol@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