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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고래 관광’ 환호와 비명

남호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지난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종영했다. 주인공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천재 변호사다. 그는 현실에서 어려운 문제에 부닥쳤을 때 고래가 물 밖으로 힘차게 뛰어오르는 모습을 떠올리며 해결책을 찾아냈다. 우영우는 고래를 사랑한다. 사랑하면서도, 아니 사랑하기 때문에 수족관에는 가지 않는다. 그는 수족관을 고래의 감옥이라고 한다. 고래의 고향은 드넓은 바다다. 그래서 수족관 앞에서 고래 방류를 촉구하는 시위도 벌인다.

드라마에 힘입어 최근 고래 관광이 인기다. 울산과 제주 앞바다에서는 고래 관광 선박이 오래전부터 운영 중이다. 고래를 전혀 볼 수 없을 때도 많지만 여러 마리가 발견되면 관광객들은 로또라도 당첨된 듯 환호성을 지른다.

하지만 같은 순간 고래는 고통의 비명을 쏟아낼지도 모른다. 고래 가운데에서도 돌고래는 독특한 신체 기능을 지니고 있다. 박쥐와 마찬가지로 시력이 좋지 않은 돌고래는 주로 음파로 물체를 식별한다. 이마의 단단한 뼈 안쪽에서 초음파를 발생시킨 뒤 물체에 반사돼 되돌아오는 소리를 길쭉한 턱으로 감지한다. 돌고래가 사용하는 초음파는 약 50㎑에서 150㎑까지 파장이 작은 매우 높은 소리라고 한다. 작은 물체도 식별할 수 있게 해준다. 때로는 동료와의 소통을 위해 숨구멍과 이빨 사이의 진동으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낮은 주파수의 소리도 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고래에게 배를 타고 쫓아다니는 선박 관광은 큰 위협이다. 실제 지난 7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등지느러미가 훼손된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발견됐다. 남방큰돌고래는 2019년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 준위협종이자 2012년 국내에선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희귀동물이다. 대정읍 일대에는 관광 선박들이 하루 수십 차례 돌고래 무리를 향해 집요하게 다가간다고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돌고래 무리 반경 50m 이내 선박 접근 금지, 접근 거리별 선박의 속력 제한 등 ‘고래 관찰가이드’가 있지만 실질적 제재 수단이 없어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해양보호생물에 대한 근접 관광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해양생태계법 개정안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계류 중이다.

관광 선박의 소음은 고래에게 큰 스트레스다. 선박 엔진에 연결돼 추진력을 일으키는 스크루가 돌아가면서 발생하는 물방울 소음이 고래가 대화할 때 주로 쓰는 주파수와 겹쳐 고래의 서식 환경을 방해한다고 한다. 스트레스는 고래 출산율을 저하시켜 개체 수를 감소시킨다. 공동 사냥을 위한 의사소통에 방해를 받아 충분히 먹이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고래의 반격이 시작된 걸까. 지난 7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항구 도시 플리머스 인근 바다에서 거대한 혹등고래가 물 밖으로 치솟은 뒤 관광객을 태운 작은 보트를 덮쳤다. 고래와 일정 거리를 유지할 의무를 지키지 않은 채 너무 가까이 다가간 것이 원인으로 추정됐다.

더 큰 불행을 막으려면 고래 관광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 해마다 약 10만명이 고래를 보기 위해 찾는다는 아이슬란드 후사비크에서는 멀리서 조용히 고래를 바라보는 ‘침묵의 고래 관찰’이 운영 중이다. 시끄러운 엔진을 장착한 보트 대신 참나무 어선을 개조한 전기 보트를 이용한다. 사진 촬영 등을 위해 고래를 성가시게 하는 운행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래에게 피해를 덜 주고 관광을 유지할 묘수를 찾아야 한다. 정부 당국이 나서서 보호 구역을 정하는 등 실질적 규제를 하기 전에 고래 관광 운영 주체나 관광객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남호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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