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내일을열며

[내일을 열며] 사과도 책임도 없는 애도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일 사과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사흘 만에 정부 관계자 입에서 처음으로 사과가 나온 것이다. 젊은이 156명이 서울 도심에서 압사를 당했는데 왜 아무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를 하지 않는가. 이것은 참사 이후 지속된 의문이었다.

매년 핼러윈 축제에 이태원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도 없는 상황이라 인파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됐다. 경찰과 용산구, 서울시 등은 이런 군중 밀집에 사전 대비가 없었다. 이게 문제가 아니었냐는 질문은 그래서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행안부 장관은 경찰을 사전 배치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고 했고, 용산구청장은 구청으로서 할 건 다했다고 했다. 경찰, 서울시, 그리고 국무총리와 대통령 역시 책임 범위 안에 있지만 책임을 말하지 않았다.

1일에는 참사 당일 112에 접수된 압사 위험 관련 신고들이 공개됐다. 참사가 일어나기 4시간 전부터 압사가 걱정되니 경찰이 와서 통제해 달라는 신고가 11건 접수됐다. 신고에 제대로 대처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2일자 신문들도 일제히 112 신고 현황을 다루며 경찰 책임을 제기했다. 그런데 경찰청장은 신고 접수와 대응을 담당한 일선 경찰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발언을 했다. 10만여명이 모이는 군중 행사에 경찰력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은 수뇌부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왜 책임도 사과도 없는가라는 의문은 1일 저녁 보도된 ‘경찰청 내부 문건’을 통해 다소 풀렸다. 참사 후 이틀 만에 경찰청이 작성한 이 문건은 시민단체와 여론에 대한 동향을 보고하면서 안전관리가 미흡했다는 정부 책임론이 일 수 있고, 이것이 정권 퇴진운동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했다. 그러니까 정부 책임을 인정하면 정권 퇴진운동에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다고 본 모양이다. 책임도 사과도 없는 정부 당국자들의 태도는 국가의 의도적이고 명백한 폭력이 아니라 조직적 무책임성에 의해 발생하는 참사의 경우 시민들이 권력자들을 처벌하는 데 실패해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구성된 세 차례의 조사위원회에 모두 참여한 박상은씨의 책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을 보면,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사실들은 대부분 밝혀졌다. 선사, 승무원 등에 대한 사법적 처벌도 이뤄졌다. 그러나 ‘국가 책임’은 밝혀지지 않았고 국가기관 고위층에 대한 처벌도 없었다. 박씨는 그 이유를 “국가의 책임을 물으려는 의지는 강했지만 거기서 ‘국가’는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모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인 처벌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재난조사란 어떻게 가능한가, 권력을 가진 이들을 면제하지도, 우리 자신을 면제하지도 않는 사회적 책임의 방식은 무엇인가 등을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책임과 사과를 거론하는 것은 정쟁이나 선동이 아니다. 책임을 묻는 데 실패한 것이야말로 참사의 또 다른 원인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었다. 1100명 이상이 사망했고, 10만명 이상이 고향을 떠났다. 하지만 정부와 도쿄전력의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일본 저널리스트 도이 도시쿠니는 최근 국내 번역된 ‘기억과 살다’라는 책에서 이런 사실을 전하면서 “그들은 ‘국가 책임’ ‘도쿄전력의 책임’ ‘전문가 조직의 책임’ ‘원자력 마피아의 책임’이란 말에 숨어 개인으로서의 책임을 면제받아 처벌받는 일이 전혀 없이, 지금도 정치가로서 또는 낙하산 기업 간부로서 평온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썼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