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있는데 택배 아저씨가 들어오신다.

택배 아저씨: “목사님 택배 왔습니다.”

나: “저 주세요.”

택배 아저씨가 날 힐끗 보신다. 그러고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택배 아저씨: “담임목사님 택뱁니다.”

나: “제가 담임목사인데요?” 날 위아래로 스캔하신다. 그러고선 하시는 말씀. “아…네~.”

목사 같지 않은가 보다. 아니 정확하게는 담임목사 같지 않은가 보다. 차림새가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니 그럴 수 있지. 한두 번 그러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늘은 반바지 차림이 아니다. 주일에야 검정 클러지 셔츠를 입고 있으니 누가 봐도 목사인 것을 알지만 평일에 처음 찾아오는 분은 약간 의외인가 보다.

가만 생각해 보면 희한하다. 일반적인 ‘담임목사’ 이미지는 항상 양복 바지에 빛나는 구두와 주름 없는 흰색 와이셔츠,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넥타이 거기에다 얼굴은 기름기가 좀 흘러야 하고 약간의 신비와 느끼함이 공존하는 미소, 거룩과 품위를 든든히 갖춘 중후하고 낮은 톤의 목소리, 거기에 기도 많이 해서 은혜 충만 살짝 쉰 목소리와 약간의 배를 내미는 센스 정도면 ‘아 담임목사구나!’ 하는가 보다.

이런 기준에 난 거리가 확 멀다. 그렇게 될 수도 없고 억지로 그러고 싶지도 않다. 여전히 덜렁거리고 건망증도 심하고 노안도 있다. 일부 교인은 내 심각한 기억력을 잘 아는 탓에 ‘붕어’라고 놀린다. 요즘은 배가 올챙이처럼 나와 억지로 아내 몰래 허리띠를 졸라맨다. 아내가 알면 운동 안 한다고 타박한다. 난 내가 아무리 봐도 전형적인 목사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다.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남대문시장 나가도 촉 좋은 아줌마들은 대번에 알아보신다. “교회 다니시죠?” “네.” “거봐, 확 표시나 총각.” 사실 총각 아닌 거 뻔히 알면서 저러신다.

‘답게 산다’는 건 무엇일까. 겉모습? 글쎄다. 내가 항상 고민하는 대목이다. ‘답게 산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노력해서 겉을 꾸며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진짜 ‘다운 모습’은 속에서 풍겨나게 돼 있다. 그러고 보니 난 아직 ‘담임목사’ 포스는 풍기지 않나 보다. 그래도 좋다. 왜냐하면 난 목사답기보다 예수쟁이다운 게 훨씬 낫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교회 안에서 담임목사스럽기보다 세상 속에서 정직하고 바른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싶다.

우리의 주님이요 선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보여주고 가르쳐 주신 게 그런 삶 아니던가. 그분이 몸소 보여주신 참된 거룩은 가식이 없고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분의 자유로움은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거침이 없다. 그분이 가르치신 복음으로 따지면 주일이든 일상이든 특별함과 평범의 구분이 사라진다.

왜냐하면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시간과 공간의 창조자이며 보호자이며 구원자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복된 삶이란 “그리스도의 다스림(나라) 가운데 그의 손을 잡고 영원히 사는 것이다.”(마르틴 루터, 대교리문답) 여기엔 교회와 세상의 구별도 없고 이생과 저생의 구별도 없다. 평범이 비범이고 일상이 영생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삶이다.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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