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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누군가는 세상과 연결된 생명줄 절실… 베이비박스 필요한 이유”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는 위기 영아와 딱한 처지의 임산부를 돕는 일은 우리 사회가 해야 할 당연한 도리라고 말한다. 사진은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기 모습. 주사랑공동체교회 제공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길에 쓰러진 아이가 있다. 지나는 사람들 중 누구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아이를 돕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춘다. 이런 행동은 선행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해야 할 당연한 도리다.

지난해 12월 26일 경기도 오산에서 의류수거함에 자신이 출산한 아이를 버리고 달아난 생모가 붙잡혔다. 남편 모르게 외도로 낳은 아이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최근 10년간 영아유기와 살해사건은 연평균 13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물론 피해자는 힘없는 지극히 작은 생명들일 뿐이다.

도와줄 이 하나 없는 딱한 처지의 임산부들이 있다. 사연도 제각각이다.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이 있고 친척에게 성폭행당한 청소년이 있다. 아이를 낳았는데 도무지 키울 처지가 안되는,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차고 넘친다. 이들을 돕는 일도 우리 사회의 당연한 도리이다.

이를 위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공적 기관과 지방자치단체별 미혼모자 보호기관, 아동보호전담요원들이 있지만 사연 많은 위기 임산부들은 흔적이 남거나 접근이 까다로운 공적 부조를 본능적으로 회피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공공이든 민간이든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우선 위기에서 빠져나갈 방법이다.

아이의 생명을 구하겠다고 시작한 베이비박스가 이제는 그 엄마들까지 구하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나를 포함한 베이비박스 동역자들은 베이비박스 문이 열렸다는 신호가 감지되면 두 개의 길로 뛰쳐 나간다. 하나는 아기에게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에게 가는 길이다. 이 일도 십여 년을 하다 보니 나름대로 비결이 쌓이고 체계가 생기게 됐다. 이제는 아이를 놓고 돌아서는 엄마를 거의 놓치지 않고 만나서 상담을 한다.

그들의 딱한 사정을 듣는 게 우선이다. 듣고 나서 우리가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안내해준다. 원칙이 있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원칙은 원가정 보호다.

기왕 아이의 생명을 구하려 베이비박스를 찾았으니 다시 아이와 함께 사는 방법도 같이 모색하는 일이 제일 먼저 고려돼야 한다는 게 하나님이 주신 의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우리는 베이비박스를 찾아야 했던 절박한 이유를 상담해 알아낸 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긴급생활비가 필요하면 그걸 마련해주었고, 잠시 아이와 함께 지낼 곳이 필요하면 그것도 마련해주었다. 물론 이를 위한 재원은 나의 것이 아니라 어린 생명을 살려내라는 후원자들의 것이었다. 나는 그들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대신하는 대리인일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아이와 살 방법을 찾지 못하거나 찾아지지 않거나 찾을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들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 곡절 많은 삶도, 자주는 아니어도 끊이지 않게 마주친다. 아이가 저를 낳은 부모와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다.

여기부터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벗어난다. 생명은 구했지만 어쩔 수 없는 사연으로 부모로부터의 양육이 포기된 아동은 ‘유기아동’으로 분류돼 국가적 책임하에 보호조치를 받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 닥치면 말 그대로 위기 임산부가 되어 생각과 행동이 흐려지기 쉽고 그런 상태에서는 아이의 안위까지 위험해지기도 한다. 언론에서나 보던 비극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기 전 상황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이럴 때 베이비박스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준다.

‘유엔아동권리협약’과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정신에 따르면 이렇게 원가정으로부터 분리된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은 가정형 보호인 가정위탁이나 입양이다. 우리는 상담하는 과정에서 이를 위해 생부모가 해줄 수 있는, 하지만 강제할 수 없는 최소한의 법률 행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설명하고 안내해준다. 그리고 아이는 안전하게 공적 기관으로 인계한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베이비박스가 아동유기를 조장한다는 주장은 그런 면에서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베이비박스는 오히려 원가정 복귀를 최우선으로 돕는, 위기임산부가 가장 만만하게 접근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안식처다. 또한 아동을 위험한 유기로부터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이미 지난 십여 년 동안 1600여 명에 가까운 위기임산부들이 상담을 통해 아이와 함께 사는 삶을 선택했고 이 선택을 함께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아이가 만 3세가 될 때까지 분유, 기저귀와 옷에서 장난감까지 필요한 모든 양육 물품을 매달 보내고 있다.

이때 물품은 물품 그 이상의 의미다. 외롭고 어렵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누군가는 당신의 아픔을 알고 세상과 연결된 끈을 잡아주고 있음을 알리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줄이다. 이 줄의 한쪽 끝을 붙잡고 서 있는 건 나 혼자가 아니다. 벼랑 끝에 매달린 가엾은 모자를 벼랑 위로 끌어 올리려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물론 나와 동역자와 후원자들이다. 그들이 있어 지난 십 년의 베이비박스가 있었고 앞으로의 십 년을 예비하는 베이비박스가 있을 수 있다.

내가 가진 힘은 이제 미력하다. 목회자로서 나의 신앙은 여전히 굳건하지만 생물학적인 나는 점점 소진되고 있다. 다만 나는 언론에서 건조하게 말하는 연평균 130건이라는 영아유기 살해사건의 이면에 아이를 살리고 자신도 살고자 했던 한 여성의 숨 막히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아직도 목도한다.

그 현실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차후의 문제다. 사람은 우선 살리고 봐야 한다. 오산 의류수거함에서 발견된 아이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아직, 베이비박스가 필요한 이유다.

이종락 주사랑공동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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