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이상 (17) ‘겨자씨’ 초대 이사장 맡아 주님 주신 소명 기쁘게 감당

장애아를 친자식처럼 돌보는
원장의 모습에 감동해 후원하던 중
재단 지원 받아 시설 재건축 소식 듣고
건축 허가부터 법인 설립 등 난관 해결

유이상(앞줄 오른쪽 세 번째) 풍년그린텍 대표가 2009년 7월 사회복지법인 겨자씨 발족식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외형적으로 고도성장을 하던 대한민국은 1997년 IMF 금융위기를 당해 전 국민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풍년그린텍도 자금과 기술이 부족한 상태에서 새로운 사업 펄프 몰드를 시작해 난관에 봉착하던 시기였다. 당시 차를 타고 가며 기독교 방송을 듣는데 우연히 어떤 분이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친구들과 생활하는 모습이 소개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내용이 쉬이 잊히지 않았다.

경기도 북부 어디쯤 동네 이름이 ‘발랑리’라는 게 어렴풋이 떠올라 수소문 끝에 파주 광탄면에 동네가 있다는 걸 알아냈다. 전화번호도 모르고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라 순전히 지도에 의지해 찾아갔다. 차량 통행이 뜸한 좁은 도로 위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의 눈까지 내렸고 제설작업도 돼 있지 않아 안산에서 꼬박 4시간이 걸렸다.

기관에 방문했을 때 그곳 아이들은 동그란 상에 놓여 있는 양푼 하나에 밥을 비벼 6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몸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몸놀림도 어눌하고 언어 구사도 어려웠다. 그중 한 아이가 숟가락으로 밥을 먹다 바닥에 흘렸는데 곁에 있던 한 여성이 주워 자기 입으로 가져가는 게 아닌가. ‘요즘 엄마들은 자기 아이가 흘린 밥도 안 먹는데….’ 그 여성이 지금의 겨자씨사랑의집 박미종 원장이다.

감동을 줬던 첫 만남이 인연이 되어 분기에 한 번씩 그곳을 찾았다. 어느 초여름 날 방문했을 때 한 재단의 지원을 받아 그 집을 헐고 새로 건축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녹록지 않을 건축 과정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겠다고 약조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건축 허가부터 주변 땅 소유자들과의 마찰, 도로 개설 등 숱한 난관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기업 운영으로 분주한 가운데서도 이 일은 꼭 열매를 맺고 싶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또 하나의 소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눈앞에 놓인 과제들을 해결해나가고 건축 과정에서 사기당할 뻔한 일을 막기도 했다. 기관을 좀 더 견고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법인화하는 과정에도 힘을 보탰다. 6명이었던 원생이 늘어나면서 정부의 지원이 거의 없는 상태로 겨자씨사랑의집을 운영하는 것이 점점 힘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법인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우선 2년 동안 직원들의 급여와 원생들의 생활비가 미리 마련돼 있어야 법인 설립 허가 요건이 충족됐다. IMF 직후라 풍년그린텍도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았던 데다 거리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쁜 마음으로 모든 일을 감당했다. 매달 지속적으로 도우면서 주변 이웃들에게도 알려 후원과 봉사로 이어지게 하는 게 초대 이사장으로서 내게 맡겨진 중요한 역할이었다.

아이들에게 진심이었던 박 원장의 변치 않는 모습도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정신지체 발달장애아들이라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힘으로 폭력을 행사할 때도 있었지만 박 원장은 늘 아이들을 차분하게 달래며 친어머니처럼 양육했다. 박 원장이 고맙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격려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저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며 동역의 길을 걷는 겁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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