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어떤 사과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만약 그가 사과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면 굳었던 마음, 응어리졌던 감정을 풀 수 있었을 텐데 그는 마지막 기회를 발로 차버렸다.

우루과이의 루이스 수아레스는 뛰어난 축구 선수다. 폴란드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프랑스의 카림 벤제마 등과 함께 201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013~2014 시즌의 온갖 상을 싹쓸이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에는 2010년 발탁됐다. 그해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에서 우루과이를 4강에 올려놓았던 주역 중 한 명이다.

우루과이는 당시 8강 경기를 가나와 치렀다. 90분 동안 1대 1. 연장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가나 선수 도미니카 아디이아가 우루과이 골문 안으로 헤더를 꽂았다. 골이나 다름없던 그 공을 수아레스가 손으로 쳐냈다. 수아레스 레드카드. 가나는 페널티킥을 얻었지만 성공시키지 못했다. 퇴장당한 수아레스는 가나의 페널티킥 실축 모습을 보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고, 웃으며 경기장을 나갔다. 수아레스는 우루과이를 제외한 다른 나라 축구 애호가들에게 ‘밉상’으로 찍혔다. 우루과이는 승부차기로 4강에 올랐다.

12년이 지나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가나와 우루과이가 다시 만났다. 가나와의 조별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수아레스는 12년 전 일을 사과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사과하지 않겠다. 핸드볼 반칙을 했지만 가나 선수가 실축했다. 선수를 다치게 했다면 사과하는 게 맞지만 난 퇴장당했고, 실축한 건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3일 열린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가나에 2대 0으로 이기고 있었다. 후반전 거의 마지막, 우리나라에 다득점에서 뒤진다는 걸 알게 된 우루과이는 그야말로 파상공세를 펼쳤다. 가나의 수문장 로런스 아티지기는 처절해 보일 정도로 그 공격을 막아냈다. 이기고 있는 팀처럼 시간도 끌었다. 가나의 오토 아도 감독은 종료 1분을 남기고 선수 교체를 했다. 16강 탈락이 결정된 상황에서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1골이 필요했던 우루과이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더 실점하지 않으려는 건 당연하다. 그렇게 경기는 끝났다. 교체돼 벤치에 앉아 있던 수아레스는 머리를 감싸고 흐느꼈다.

가나 수비수 대니얼 아마티는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12년 전 사건을 복수한 건 아니라면서 “우리가 16강에 갈 수 없다면 우루과이도 못 가게 막자는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가나는 설욕하진 못했지만, 비공식적인 복수는 톡톡히 했다. 그래도 우루과이에 대한 앙금을 털어내진 못했을 듯싶다. 가나는 설욕과 복수를 위해 축구화 끈을 계속 조일 테고, 경기 때마다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을 듯 보인다.

‘그때 어떻게 했더라면’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하다. 다만 반면교사로 삼을 순 있다. 사과를 거부한 수아레스의 입장을 일견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에게 부당하다는 느낌을 주고 불편하게 했다면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는 말 한마디’라도 해야 했다. 만약 수아레스가 12년 전 일을 사과했다면 가나 선수들이 이 악물고 수비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과장해서, 우리에겐 불행한 일이었겠지만, 사과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한 골 먹어줬을 수도 있다.

주변에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길을 막아도, 어깨를 부딪쳐도, 심지어 책임질 일인데도 모른 척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과할 대상에게 솔직하게 진심을 담아 분명하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아닌 척 뻔뻔하게 있다가 시기를 놓치면 원한을 부른다. 그 원한은 훗날 그대로 그 사람에게 돌아간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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