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노벨상 수상 에르노가 써낸 ‘18세 여름의 첫 경험’

[책과 길] 여자아이 기억
아니 에르노 지음, 백수린 옮김
레모, 217쪽, 1만6000원

아니 에르노의 문학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경험에 대한 용감하고 치열한 글쓰기로 설명할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누구나 그 속에서 자기의 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에르노 문학이 가진 힘이다. 이번에 ‘여자아이 기억’을 출간한 레모 출판사는 에르노가 지난 5월 발표한 ‘젊은 남자’도 연내 출간할 예정이다. 갈리마르(프랑스 출판사) 제공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여성 소설가 아니 에르노(82·Annie Ernaux)가 2016년에 발표한 소설이 소설가 백수린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여자아이 기억’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국내 출간된 아르노의 소설 중 최근작이다.

소설은 70대의 소설가 에르노가 열여덟 살 당시의 자신을 ‘여자아이’ ‘1958년 여자아이’ ‘아니 뒤센느(결혼 전 이름)’ ‘아니 D’ 등으로 호명하면서 그 소녀가 1958년 S라는 지역에서 열린 여름방학 캠프에서 경험한 일을 회고하는 형식이다.

이것은 에르노가 오랫동안 쓰지 못했던 이야기라고 한다. “언제나 일기 속 문장들엔 ‘S의 여자아이’나 ‘1958년 여자아이’에 대한 암시들이 있었다. 20년 동안, 나는 책을 쓰려는 내 계획 속에 ‘58’이라는 숫자를 적는다. 그건 여전히 쓰지 못한 책이다.”

에르노는 “그 여자아이를 잊고 싶었다”고 했다. “정말로 그녀를 잊기를, 그러니까 그녀에 대해서 더 이상 쓰고 싶은 욕구를 갖지 않기를.” 그것은 수치심에 대한 기억이었다.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는 수치심, 경멸과 모욕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원했다는 수치심, 과거의 자신이 너무나도 부적격한 사람이었다는 수치심.

노년에 든 에르노는 그 여자아이에 대해 쓰지 못한 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악몽에서처럼 앞으로 나아가려는 나를 방해하고 붙잡는 것들을 치워버리기 위해 지금까지 써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003년에 이 이야기를 쓰다가 50쪽쯤에서 멈춘 적도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나 2013년에 마침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1958년 여름으로부터 55년이 흘러서.

여름방학 캠프는 어머니의 과보호와 카톨릭계 여학교에서 성장한 식료품점 딸 아니 D가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경험이었고 “파티를, 자유를, 남자의 육체를 발견했던 장소”였다. 에르노의 묘사에 따르면, 지도교사로 캠프에 참여했던 18세 여자아이는 타인들의 세계를 동경하고 사랑을 경험하기를 기다린다. 거기서 한 남자에 빠지고, 젊은 무리가 조성하는 자유와 쾌락의 분위기에 몸을 던진다.

이 기억은 에르노에게 수치스럽고, 무엇보다 설명되지 못한 것이었다. 에르노는 50년이 지나도 자기 안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마음을 와해시켜버리는 그 여자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리고 마침내 심연 속의 그 여자아이를 구출해낸다. 그 여자아이가, 캠프에서의 그 밤이, 그 수치와 혼란, 열망이 자신을 글쓰기로 인도했음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사적인 경험에 기반한 글쓰기, 수치심이라는 주제 등 아르노 문학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70대의 저명한 여성 작가가 50년 전 남자와의 서툰 첫 경험을 쓴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노작가가 청춘 시절의 이야기를 이토록 정확하고 아름답게 써낼 수 있다는 것도 놀랍다.

에르노는 소설 속에서 자신과 이 이야기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또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을 이토록 치열하게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지 거듭 질문한다. “나는 어떤 여자가 50년도 더 되었고 자신의 기억으로 뭔가 새로운 걸 덧칠할 수도 없는 오래된 장면들을 회상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에르노는 그러면서 “이 여자아이, 아니 D와 다른 누군가 사이에 적어도 단 한 방울이라도 닮은 구석이 존재한다는 걸 발견하고 싶다는 희망”을 언급한다. 에르노의 사적인 소설들에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이유도 여기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에르노가 그려낸 1958년의 여자아이는 에르노만의 기억이 아니다. 청춘을 통과해온 이들이라면 그 여자아이에게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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