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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두 번은 없다

강주화 산업부 차장


한 해를 보내며 올해의 멋진 시간을 떠올렸다. 얼마 전 동료들과 프로필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다. 사진작가는 여러 자세를 요구했고 매우 다양한 표정을 이끌어냈다. 제일 일찍 스튜디오에 도착해 마지막까지 있었던 나는 순간적으로 나온 동료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이나 평소 보기 힘든 근엄한 자세, 각자의 독특한 분위기에 감탄했다.

어떤 이는 웃는 모습이 너무 잘 어울렸다. 태어날 때부터 그 표정 같았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한 부드러운 얼굴은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했다. 평소 긴장감을 놓지 않고 일하는 이였다. 늘 농담하기 좋아하는 동료가 작가의 요구에 따라 턱을 괴고 앞으로 쏘아볼 땐 놀랐다. 일할 때는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중후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발견이었다. 카메라가 만든 작은 틈 사이로 누군가의 모습이 표출됐다. 함께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동료들의 그런 표정을 보거나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곳에서 그 시간 그 얼굴들을 보는 것은 두 번 다시 없을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반복적인 일상에 눈부신 빛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시간이 특별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내가 놓쳐서 후회되거나 함께하지 못해 아쉬운 시간들도 있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16강 진출을 확정한 지난 3일 2022 카타르월드컵 경기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일찍 잠들었던 나는 황희찬이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넣은 결승골을 실시간으로 보지 못했다. 황희찬은 후반 추가시간에 손흥민의 패스를 받아 득점하며 2대 1 역전승을 거뒀다. 동영상으로 그 장면을 다시 볼 순 있었지만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가족이나 지인들이 흥분하며 그 장면을 언급할 때마다 그날 밤 졸음을 참지 못한 나를 탓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내가 놓친 그 장면을 ‘가장 기억할 만한 7가지 순간’이라고 공표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에 같은 물에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것이다. 변한 것은 강물만이 아니다. 강물에 발을 담그는 나도 달라진다. 첫 번째 발을 담그는 나와 두 번째 발을 담그는 나는 같지 않다.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의 모든 순간은 유일무이다. 특별하다. ‘세 가지 질문’이란 톨스토이의 단편이 있다. 삶의 진리를 알고 싶은 왕이 숲속에 사는 현자를 찾아간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 사람,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현자는 답하지 않는다. 그때 피 흘리는 남자가 그들에게 달려온다. 왕은 그 남자를 지혈하고 정성껏 간병한다. 다음 날 아침 현자는 왕에게 답한다. “당신은 이미 질문의 답을 알고 있소. 어제 다친 사람이 당신 앞에 있었을 때 가장 중요한 시간은 그때였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다친 그 사람이었고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사람이 귀한 생명을 지키도록 치료하는 것이었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다. 충만한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시제는 현재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시간.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를 읽는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2023년을 기대한다.

강주화 산업부 차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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