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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전쟁의 ‘공식’은 바뀌지 않는다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전면전 사상 가장 짧고 가장 적은 사상자를 낸 전쟁은 2003년 이라크전쟁이었다. ‘악의 축’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려던 미국은 26일 만에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까지 진격해 전쟁을 끝냈다.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동원한 병력은 30만명. 12만5000여명이 이라크 영토에서 직접 작전에 참가했지만 인명 피해는 미군 117명, 영국군 30명이 전사하고 400여명이 부상당한 게 고작이었다. 이라크군 피해도 군인 2320명, 민간인 1253명 사망에 부상 5100여명이었다. 압도적 첨단 군사기술이 재래식 전력을 어떻게 제압하는지를 보여준 ‘가장 현대적인 전쟁’으로 기록됐다.

발발 1년이 다 돼가는 우크라이나전쟁은 전혀 양상이 다르다. 세계 2위의 압도적 군사력을 가진 러시아가 지난해 2월 24일 10만명 이상 병력과 각종 전투차량, 전투기 등을 동원해 침공했을 때만 해도 우크라이나군은 ‘독 안에 든 쥐’처럼 보였다. 하지만 금방 끝날 것 같던 ‘거인과 난쟁이’의 싸움은 ‘골리앗 대 다윗’의 진짜 전쟁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무리 몰아쳐도 애국심으로 단단하게 무장한 우크라이나는 꿈쩍도 안 한다. 되레 미국이 이끄는 서방의 각종 무기를 지원받아 러시아군을 끝도 없이 위기로 빠뜨리고 있다.

미국의 군사전문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는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13만여명 전사하고 우크라이나군도 10만명 가까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모든 정보를 왜곡·조작하는 러시아 당국의 집계는 차치하고, 비교적 현실에 가깝다는 우크라이나군 집계에는 러시아군이 20만명 이상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통상 부상자는 전사자의 3~4배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전쟁의 부상자는 양측을 다 합쳐 100만~200만명이나 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다 민간인 사상자까지 더하면 인명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러시아가 의도적·비의도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에 걸쳐 미사일 공습과 포격을 감행해 왔고, 점령지역에서 민간인 살해와 고문 등 전쟁범죄를 저질러 왔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차곡차곡 축적해 왔던 육·해·공군 무기의 대다수를 거의 소모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상전의 핵심이라 여겨지는 전차는 구형 T72부터 최신형 T90까지 투입했지만 특별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를 배후 지원하는 서방은 상대적으로 무기를 적게 투입하고 적게 소모했지만, 역시 그 규모는 전력 손실이 불가피할 정도에 이른다. 적은 인명 피해를 야기하면서도 치명적인 무기로 결정적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지극히 현대적인’ 전격전의 개념은 이번 전쟁에서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압도적 전력을 가진 국가와 그렇지 못한 약소국의 대결은 속전속결로 끝날 것이란 예상도 전혀 실재화되지 못했다.

러시아는 이제 첨단 무기가 아니라 총알과 병사, 포탄을 무제한 투입하는 백병전을 준비하고 있다. 3개월 이상 지속된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 전투’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는 중이다. 한 도시와 그 인근 마을이 완전히 초토화되는 양상일 정도다. 이번 전쟁의 양상은 군사전문가들이 예견했던 ‘미래 전쟁’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한 치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인명을 살상하는 현실, 수십만개 수백만개의 총탄과 포탄이 쏟아지는 전선, 아무렇지 않게 전쟁범죄가 벌어지는 아비규환….

우크라이나전쟁은 20세기 초중반 굳어졌던 오래된 ‘전쟁의 공식’이 바뀌지 않았음을 웅변한다. 베트남전 이후 세계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친 파괴적인 전쟁으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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