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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영걸 (7) 청소년기 방황 거듭하며 ‘목사의 꿈’ 버리기로 결심

어릴 때 꿈은 늘 목사 되는 것이었지만
소아마비로 친구들 놀림과 생활고에서
못 벗어나는 가정형편 보며 진로 변경

김영걸(왼쪽 두 번째) 목사가 1994년 가족들과 함께 할머니 안초순 전도사가 사역하던 경기도 광주 가나안교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할머니는 김 목사가 목회자의 길을 가도록 늘 기도하셨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목사가 되라는 할머니 말씀을 듣고 자랐다. 그래서 가정예배를 드리거나 식사 전 기도할 때면 “하나님, 훌륭한 목사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했다. 이렇게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할머니는 그때마다 다시 기도하도록 했다. 목사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입에 배는 바람에 교회에서 대표 기도할 때도 “훌륭한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뻔한 적도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저절로 내 어린 시절 꿈은 커서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교회에서 설교하는 목사님을 볼 때마다 ‘나도 커서 저 강단에서 설교하겠지’라고 생각하거나 ‘나는 어떻게 설교를 할까’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러다 청소년기 방황을 거듭하면서 마음속으로 목사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결단했다. 소아마비로 놀림을 당하면서 점점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목사 되겠다고 결심한 나를 소아마비에 걸리게 하셨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결국 하나님 뜻대로 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목사가 되기 싫은 이유는 또 있었다. 할머니는 전도사, 아버지는 목사인 가정에서 성장하다 보니 목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아버지는 늘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고생 하셨고 어머니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래서 나는 “사람 눈치 보면서 살지 말아야지. 돈을 많이 벌어서 부모님을 편하게 해 드려야겠다”라거나 “이렇게 가난하고 이사를 많이 다녀야 하는 목사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여러 차례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문과가 아닌 이과를 선택했다. 어릴 적부터 목사를 목표로 기도해 왔던지라 혹시라도 마음이 약해질 수 있으니 철저하게 목사가 되지 않는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마음속으로는 방황을 했어도 교회 생활은 늘 충실하게 했다. 신앙이 바닥을 쳐도 겉으로는 교회에 열심히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저 습관적이었다. 어릴 적부터 철저한 신앙훈련을 받았기에 주일에 교회를 가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당시 나를 품어준 교회와 목사님, 교회학교 선생님 덕에 학창 시절 방황하던 나는 크게 엇나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임지를 여러 번 옮기셨기에 나는 이사를 하면서 정말 많은 교회를 거쳤다. 서울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금호교회에 출석했다. 당시 초등부 담임선생님이 집으로 심방을 온 기억도 난다.

중학교 시절 다닌 교회는 광석교회다. 당시 담임목사님이 김영수 목사님이었고 중·고등부를 지도한 목사님이 안기학 목사님이다. 그리고 같은 반 친구가 이상길 장로다. 이 장로는 지금도 광석교회를 섬기고 있다. 광석교회에서 중·고등부 시절 참여했던 여러 행사도 기억이 나고 목사님의 믿음직한 인도와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사역도 눈앞에 선하다.

경북 안동에 계시던 아버지는 이후 충남 아산 온양제일교회에 부임하셨다. 나는 방학 때면 아산에 내려가 온양제일교회를 섬기다가 개학하면 다시 서울로 오곤 했다. 누나는 온양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지금의 매형을 만났다. 그 후 누나 가족은 천안에 정착했다. 매형은 김갑길 천안중앙교회 은퇴 장로고 누나는 김성애 권사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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