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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와 문화마다 독특한 인사의 언어와 몸짓이 있다. 인간이 관계와 소통의 존재이다 보니 사회적 삶에서 인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도 간단한 인사말부터 배운다. 해외여행 갈 때도 현지 인사법을 익힌다.

지구인의 삶에서 인사가 중요한 만큼 SF 영화를 보다 외계인이 나오면 어떻게 인사를 할지 관심을 두게 된다. 전 세계 역대 영화 흥행 수익 1위를 기록 중인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에 나오는 외계인 나비족은 “I see you”(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며 인사한다. 영화에 나오는 설명에 따르면 이 인사말은 상대의 외양만이 아니라 내면까지 진실하게 보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나는 당신을 봅니다’는 단순한 형식적 인사를 넘어 화자의 다양한 생각과 감정까지도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이다.

눈은 뇌의 외부기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시각은 뇌가 처리하는 감각 정보의 약 70%를 담당한다. 그만큼 우리는 외부 세계와 교류할 때 보는 것에 크게 의지한다. 하지만 매 순간 뇌로 유입되는 정보량이 너무나 많기에 우리는 ‘보면서도 보지 않는’ 기술을 본능적으로 습득한다. 즉 눈을 뜨고 있기에 세계로부터 시각 자료는 계속 받아들이되 반복되거나 무의미한 정보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매일매일 우리가 수많은 이를 마주치더라도 각 사람의 모든 언행에 집중하느라 뇌가 탈진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보면서도 보지 않는 이중적 시선이 인간의 근원적 이기심 혹은 두려움에 잠식된다는 데 있다. 그 결과 나는 상대를 보면서 나의 주관에 따라 혹은 욕구 충족을 위해 본다. 타인의 다름이 불편하면 내게 익숙한 문화와 신념, 관습을 잣대 삼아 그를 개선의 대상으로 삼거나 심지어 악마화하면서 본다. 이로써 내 앞에 현존하는 타자는 나의 욕망 실현에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별 볼 일 없는 작고 초라한 존재로 쪼그라든다.

삶의 여러 영역에서 ‘인간의 타락’은 안타깝게도 ‘시선의 타락’과 맞닿아 있다. 실제 교사와 학생, 고용주와 고용자, 부모와 자녀, 목회자와 교인,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도 상대를 자기 욕심을 채우는 도구처럼 보려는 유혹에 수시로 부딪힌다. 또한 자아의 안정적 삶과 경제적 풍요를 종교적 숭배 대상처럼 여기는 풍토는 타인을 도구 내지는 잠재적 적으로 간주하도록 부추기며 현대 문화를 더 폭력적으로 만든다. 결국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선은 곳곳에서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현대 기독교 윤리학자들은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실재를 새롭게 ‘보는’ 훈련이라고 말한다. 복음서만 보더라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만나고 놀랐던 것은 그분의 가르침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그분의 모습이 억눌렸던 이들에게는 회복을 일으켰고, 기존 체제를 수호하던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위협이 됐다. 이처럼 상대를 과장과 망상 없이 보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도 요구되는 능력이자 성령의 도움으로 개발할 덕목이다.

우리의 관계가 왜곡돼 가고 문명이 비인간화될수록 타자를 진실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시선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나비족 인사까지 언급할 것도 없이 잘 알려진 영어 인사 ‘hello’도 어원사전에 따르면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holla’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니 새해에는 습관적으로 주고받는 인사를 타인이 가진 고유한 가치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는 계기로만 삼아보면 어떨까. 마땅히 주목과 존중을 받을 사람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고 언어와 몸짓으로 표현할수록, 현실의 칙칙함과 어두움이 짙어질지라도 일상에서 희망의 빛은 더 퍼져나가지 않을까.

김진혁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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