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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최고·최대’ 과시욕이 남긴 것

남호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가마솥·CD·북….’ 지방자치단체가 ‘세계 최대’ 기록을 노리고 만든 조형물 가운데 이달 들어 ‘실패 교과서’로 다시 도마에 오른 대표적 사례들이다. 발단은 충북 괴산의 가마솥이었다. 괴산읍에 있는 고추유통센터 한편에 거대한 가마솥이 자리하고 있다. 괴산군이 2005년 거액의 혈세를 쏟아부어 만든 것이다. 지름 5.68m, 높이 2.2m, 둘레 17.8m, 두께 5㎝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주철만 43.5t이 들어갔다. 솥뚜껑을 여닫는 데 기중기가 동원돼야 할 정도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조리기구로 기네스북 인증을 받으려 했지만 호주의 질그릇에 밀려 실패했다. 실용적인 면에서도 퇴출됐다. 당시 화합 차원에서 ‘군민 4만명이 한솥밥을 먹겠다’고 호언했지만 솥 바닥이 워낙 두꺼워 밥 짓기가 불가능했다. 밥을 하면 아래는 타고 위는 설익는 ‘삼층밥’이 되는 등 요리가 불가능해 5억원짜리 고철 덩어리로 전락하며 처량한 신세가 됐다.

18년째 무용지물로 방치됐던 가마솥이 다시 세상의 관심으로 떠오른 것은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방안 때문이었다. 송인헌 괴산군수는 최근 이 가마솥을 지역 관광지인 산막이옛길로 옮겨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가마솥의 명예를 회복해주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마솥을 옮기는 데만 2억원가량의 예산이 추가로 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혈세 낭비 사례를 바로잡기 위해 또다시 억대의 세금을 써야 하느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특히 괴산 출신인 김영환 충북지사의 ‘가마솥 이전 반대’ SNS 글이 큰 파문을 낳았다. 김 지사는 ‘예산의 거대한 낭비와 허위의식의 초라한 몰락을 보여준다. 동양 최대·세계 최초를 좋아하던 낡은 사고와 성과주의, 실패학 교과서의 빼놓을 수 없는 메뉴’ 등의 표현을 쏟아내며 자치단체의 어이없는 행태를 비판했다.

충북 청주시의 ‘초대형 CD 프로젝트’와 충북 영동군이 제작한 세계에서 가장 큰 북 ‘천고’도 덩달아 뭇매를 맞았다. 기네스북 세계 기록으로 등재됐다는 점에서는 가마솥보다 나을 수 있지만 이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어서다.

청주시는 2015년 국제공예비엔날레를 개최하면서 행사가 열리는 청주시 옛 연초제조창 건물을 모두 반짝거리는 CD로 장식했다. 시민들에게서 수집한 48만9000여장의 폐CD와 3억7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63빌딩을 눕힌 것과 맞먹는 크기에 형형색색의 빛을 반사하는 초대형 CD 외벽 장식은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행사가 끝나자마자 빛은 바랬다. 유지하는 데 해마다 적지 않은 관리비가 소요되자 2017년 2000만원이 추가 투입돼 모두 철거되는 수모를 겪었다. 2010년 2억3000만원을 들여 만든 천고도 마땅한 활용 방안이나 관리할 방법이 없어 천덕꾸러기가 됐다. 4년 동안 임시 보관소에 방치됐다가 2015년 영동군에 있는 국악체험촌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고·최대’가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기록을 인정받고 다양한 행사에 사용되는 사례가 없지 않다. 경남 의령군은 2005년 4월 길이 251m, 둘레 5~6m, 무게 54.5t의 ‘큰 줄’을 만들어 기네스북에 등재했다. 이 줄은 의병의 날 기념축제 때 볼거리를 제공하며 관심을 받고 있다.

과도한 전시성 행정을 막기 위해서는 지자체장들의 인식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 성과 내기에 급급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의미 없는 근시안적 기록에만 목맬 것이 아니라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관광 자원을 발굴하는 데 더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다.

남호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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