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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독일 전차

고승욱 논설위원


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은 전격전으로 공격 34일 만에 파리에 입성했다. 10년에 걸쳐 동부 국경에 750㎞에 달하는 마지노선을 구축한 프랑스는 독일군이 북쪽 벨기에 평야지대로 우회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독일군 주력부대는 프랑스 북동부 아르덴숲을 돌파했다. 나무가 빽빽해 일반 차량도 지나가기 어렵다는 그곳을 가볍고 빠른 1호 전차를 앞세워 순식간에 통과했다. 유령처럼 숲에서 튀어나온 전차가 뒤에서 공격하자 세계 최강이라던 프랑스 육군은 그대로 무너졌다.

이를 계기로 독일 전차는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당시 전차는 대포를 실은 철갑 차량에 불과했다. 정작 쓸 곳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히틀러는 가치를 알아봤다. 급강하 폭격기 슈투카와 함께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그 첫 작품이 1호 전차다. 베르사이유조약 때문에 농업용 트랙터로 위장 개발돼 작고 철갑이 얇았지만 그게 장점이 됐다. 전차 수십대를 같은 부대에 편성하고, 이들이 무전기로 연락하며 작전을 수행하는 전차전은 전투의 개념을 바꿨다.

독일 전차의 계보는 기관총이 전부였던 1호, 기관포를 장착한 2호, 첫 중전차이자 50㎜포를 탑재한 3호, 75㎜포를 채용한 4호로 이어진다. 소련 침공 뒤에는 T34 전차에 충격을 받고 설계를 바꾼 5호 전차(판터), 6호 전차(티거)로 발전한다. 특히 6호 전차는 당대 최고의 성능과 전투력을 인정받았다. 나치 독일의 패망으로 실패한 무기 신세가 됐지만 기술과 제작 시스템은 사라지지 않았다. 1955년 창설된 독일연방군의 전차 개발 계획에 따라 등장한 레오파르트 전차가 명맥을 이어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튀르키예 등 나토 각국의 주력 전차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 레오파르트 전차가 이번엔 우크라이나로 간다. 독일 정부가 구 모델인 레오파르트1 전차 178대의 우크라이나 수출을 승인한 것이다.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달고 모스크바로 진격하며 악명을 떨쳤던 독일 전차의 과거사 때문에 오랫동안 망설이다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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