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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동네책방과 도서정가제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대통령실 국민제안 웹사이트에서는 지난 9일까지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 허용’을 주제로 국민참여 토론이 진행됐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소규모 영세서점에 한해 일정 기간이 지난 장기 재고 도서의 자율적 할인판매를 허용해 동네서점의 어려움을 덜어주자는 의견이 국민제안을 통해 접수됐고, 이를 국민참여 토론 1호 주제로 선정했다.

‘장기 재고 도서 자율 할인판매 허용?’이라는 제목으로 한 달간 토론에 부친 결과 2195명이 찬성, 110명이 반대를 표시했다. 국민참여 토론이라는 명칭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참가자가 적었지만 결과만 보면 찬성 의견이 압도적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토론 결과를 문화체육관광부가 상반기 중 구성할 도서정가제 협의체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체부는 현재 시행되는 도서정가제의 타당성을 점검해 오는 11월까지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토론이 도서정가제 타당성 검토를 위한 유의미한 자료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잘못된 얘기를 놓고 토론을 벌였기 때문이다. 동네서점이 장기 재고 도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재고 도서에 한해서라도 할인판매를 허용해줄 것을 원하고 있다는 토론 주제의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 동네서점에서 재고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할인판매가 허용된다면 도서정가제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는 게 사실이다.

서점은 대부분 위탁판매 형식이라서 책을 받아서 팔다가 남으면 출판사로 반납하면 된다. 책을 구매해 판매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경우라도 영세서점으로서 한 번에 책을 많이 들일 수 없기 때문에 재고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출판사나 ‘총판’이라고 불리는 도서유통회사라면 재고가 문제될 수 있다.

그러니 재고 도서 할인판매는 동네책방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할인판매가 허용되는 것을 계기로 도서정가제의 틀이 흔들리게 된다면 동네책방들이 생존의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동네책방들은 그동안 정가제가 무너지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얘기해 왔다. 할인 경쟁이 시작된다면 마진도 작고 자본력도 약한 동네서점으로서는 버티기 어렵다. 지난 몇 년간 전국 곳곳에서 나타난 책방 창업 바람은 도서정가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도서정가제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보고 책방 운영을 계속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서점 주인들이 적지 않다.

2003년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정으로 도입된 도서정가제는 출판사가 판매하는 모든 간행물에 정가를 표시하고, 할인판매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제도다. 할인은 신간·구간, 온·오프라인, 서점 규모와 관계없이 동일하게 최대 15%(현금 할인 10%+마일리지·사은품 등 간접 할인 5%)까지만 허용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에 8만개 넘는 출판사, 2500개 정도의 서점이 있고 5인 미만 업체가 각각 75%를 차지할 정도로 영세하다”며 “가격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는 출판사와 서점을 보호하는 제도가 도서정가제”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폐지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지나친 규제이자 소비자들이 더 싸게 책을 살 기회를 원천 차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3년마다 도서정가제의 타당성을 재검토하도록 해놓았다.

도서정가제가 논란의 대상인 것은 맞고, 11월 타당성 검토 시한을 앞두고 여론을 수렴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에 바탕을 둔 여론이라야 여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실이 국민제안의 타당성을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고 국민참여 토론에 부치는 일이 또 일어나선 안 되겠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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