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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글로벌 공급망 변화, 신속대응체제 갖춰야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가 그때까지 공들여왔던 글로벌 경제협력 구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중국은 완벽하리라고 여겼던 미국 경제·금융시스템에 위기가 발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시대가 끝나가는 징후라고 인식했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미국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분석도 대세였다. 많은 경제전문가도 그런 예측에 힘을 실어줬다.

‘중국 대세론’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징후도 감지됐다. 중국은 이 무렵 디지털 기반 기술 패러다임 변화에 눈을 돌렸다. 미래 기술을 선점한다면 중국은 그야말로 세계 최강의 지위에 오를 것이 분명해 보였다. 마치 미국이 20세기 들어 ‘포드주의’라 불리는 자동차 기반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하며 유럽을 제친 것과 같은 일이 재연될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자유무역 질서를 존중하기로 약속했던 중국이 세계의 기대를 저버리면서 붕괴하기 시작했다. 패권자로 행동하는 우를 범했다. 중국은 주변국들에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려고 경제 보복의 칼을 휘둘러댔다. 한국을 겨냥한 사드 보복 상처는 아직도 우리에게 깊이 남아 있다. 중국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공동 번영을 향해 함께 갈 수 있는 글로벌 파트너라고 믿기 어려운 국가로 낙인찍혔다.

이런 가운데 급박한 국제정세 변화는 세계 경제를 각자도생의 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믿을 수 있는 우방국의 존재가 더욱 절실해졌다.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구매해 경제적 안정을 지원해 주는 대가로 유럽의 항구평화를 그려보려 했던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러시아를 믿은 ‘순진한’ 사람이 돼 버렸다. 믿을 수 있는 협력국을 식별해내고 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세상이 됐다. 패권국인 미국조차도 ‘트럼프 외교’가 저지른 국제적 불신을 해소해 보려고 틈만 나면 동맹을 외치고 있지 않은가.

눈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한국이 경제 기적을 이룩한 것은 수출을 통해 대외 개방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 경제 규모는 어느덧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우뚝 성장했다. 다만 대외 개방 경제는 강점이 크지만 외부 경제 변화에 완전히 노출돼 있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자원이 거의 없다시피 한 한국은 그만큼 식량·에너지 등 생명줄과 같은 자원 공급의 외부 의존도가 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안전하게 살아남으려면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과 협력 관계를 더욱 늘려야만 한다.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 우방국을 찾을 수 있을까. 우선 각국에 대한 정보수집 능력을 높여 그들이 어떤 처지에 처해 있는지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유사시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재정·행정 체계를 갖춰야만 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경제 안보를 위한 공급망 관리 기본법’도 그중 하나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믿었던 우방국이더라도 그들의 처지가 어려워져 기회주의적 행동을 할 수 있다. 이에 대비한 제2, 제3의 안전장치 역시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제도 마련은 타 국가가 한국을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남미 국가들은 잦은 정변으로 정책 기조가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대외적으로 신뢰라는 자산을 상실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고 만성적인 저성장의 원인이 됐다.

경제가 먹고 사는 문제라면 안보는 죽고 사는 문제라고 한다. 불행하게도 험난한 이 시국은 ‘경제안보’라는 새로운 합성어를 만들어냈다. 먹고 살고 죽는 문제에 다 대응하려면 방법은 단 하나다. 경제안보 공급망 기본법 마련과 같은 철저한 대비를 하루속히 해둬야 할 것이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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