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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지미 카터, 성공한 전직 대통령

고승욱 논설위원


1977년 미국 3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미 카터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취임 직후 75%였던 지지율은 3년 만에 28%까지 떨어졌다. 자신이 속한 민주당 주류로부터 외면을 받아 정치적으로 기댈 곳도 없었다. 가장 큰 원인은 경제위기였다. 당시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 있었다. 73년 시작된 오일쇼크 탓이었다. 카터에게는 넘기 힘든 산이었다.

73년 46억 달러였던 미국의 석유수입액은 77년 450억 달러로 늘었다. 79년 이란혁명으로 2차 오일쇼크가 시작되자 물가마저 한계를 넘었다. 자동차회사가 먼저 해고를 시작해 실업자가 쏟아졌다. 이 때 카터는 그 유명한 ‘불쾌한 연설(malaise speech)’을 한다. TV로 생중계된 이 연설은 에너지 절약을 위한 다각적 정책 시행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방종과 소비를 숭배하지 말라”는 카터의 말을 질책으로 들었다. 국가안보를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여행을 자제하라는 말에 불편함을 느꼈다.

여기에 인권과 환경을 앞세운 외교 노선이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 앞에 속속 무너지면서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1980년 대선에서 참패한 카터는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또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듭된 가뭄으로 고향의 땅콩농장이 파산한 것이다. 집 한 채만 남기고 모든 자산을 팔아 간신히 빚을 갚은 카터는 다른 전직 대통령처럼 저술과 강연으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대안은 적극적인 사회 활동이었다.

시작은 집 없는 사람을 위한 해비타트 운동이었다. 이후 아프리카에서 매년 350만명이 고통받는 기생충 ‘기니웜’ 퇴치 운동도 주도했다. 그리고는 전 세계 분쟁 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평화와 인권을 호소했다. 94년 북핵 위기 때는 빌 클린턴의 특사로 김일성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가장 성공한 전직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런 카터가 100세를 앞두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가족들과 보내겠다며 고향으로 다시 돌아갔다. 전직 대통령마다 우여곡절을 겪는 우리로서는 마냥 부러운 일이다.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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