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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저물어가는 ‘글로벌 시대’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글로벌주의는 전 세계가 무역·교류의 장벽을 없애고 하나의 글로브(globe·지구)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이자 행동 경향이다. 1991년 소련이 몰락하자 20세기 중후반을 지배하던 냉전 체제, 동서 대결,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이념 대결도 끝이 났다. 그리고 글로벌 시대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미국과 서방, 옛 소련과 동유럽, 일본과 중국 등 그전까지 전혀 교류할 수도 교류하지도 않았던 국가들이 마치 하나의 나라처럼 움직였다.

서로 앞다퉈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후진국에는 번영의 새로운 기회가, 선진국엔 좀 더 값싼 생활필수품을 향유할 기회가 열렸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을 맡았고, 미국은 ‘세계의 시장’ 역할을 맡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세계 경제는 국경이 없는 것처럼 움직였다. 미국 주식시장이 폭락하면 몇 시간 뒤 일본과 한국의 증시가 함께 떨어졌고, 중국 자본시장도 요동쳤다. 1970년대 ‘석유의 무기화’를 주창했던 중동 산유국들의 아랍민족주의마저도 글로벌 시대의 광풍 앞엔 힘을 쓰지 못했다. 어느 한 나라의 번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같이 움직이는 모든 나라의 번영을 위해 각기 다른 제 역할을 하는 체제가 형성됐던 셈이다.

글로벌 체제에선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유럽도 한국도 아시아도 남미도 예외가 없었다. 누가 원자재를 공급하면 누군가는 그걸 1차 가공하고, 그다음의 누군가는 또 그걸 완성된 상품으로 만들었다. 컴퓨터 한 대도 ‘100% 국산’이 불가능한 시대였다. 한국산 메모리반도체, 미국산 CPU, 중국산 본체 플라스틱, 일본산 트랜지스터가 합쳐져야 했다. 글로벌 시대의 다른 이름은 세계 경제의 분업 체제였던 셈이다.

그랬던 글로벌 시대가 20년을 넘어가자 점점 저물어가고 있다. 세계 경제 전문가와 국제정치학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던 2020년 초부터 글로벌 시대의 종언을 이야기했다. 그 근거는 세계의 분업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데 있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공업 생산력에 의존하던 미국이 이제 와서 ‘노 차이나(No China)’ 대열의 선봉에 나선다. 2000년대 들어 중국 경제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미국은 브레이크를 걸었다.

단순히 중국의 번영을 보고 놀란 미국의 질투심 때문이 아니다. 성장한 경제력으로 서방 전체의 안보마저 위협하게 된 중국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수백년 동안 쌓아온 선진국의 자본·기술·노하우를 중국에 다 빼앗기게 될 것이란 위기감도 작용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노 차이나 행보는 더 빠르고, 더 깊숙하며, 더 정밀하다. 미국만이 아니라 서방 전체를, 선진국 전체를 노 차이나 대열에 결집시키고 있다.

세계가 하나의 지구라는 개념은 어느덧 퇴락하고, 대신 낡은 20세기 유물로 여겨졌던 진영 대결이 대세가 돼 간다. 20세기 냉전이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대결이었다면 21세기판 신냉전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블록이 맞붙는 양상이다. 불과 지난 몇 년 사이에 미국·서방과 중국·러시아가 각각 한 줄로 서서 20년 이상 밀착했던 경제 분업 체제를 편갈라 나누고 있다.

편 가르기가 급속할 때는 중간지대가 생겨나지 않는 법이다. 영세 중립국이던 스웨덴 핀란드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되겠다고 나섰는지를 봐도 알 수가 있다. 올해를 고비로 한국도 ‘미국이냐 중국이냐’ 하는 양자택일 압박이 훨씬 더 강해질 게 틀림없다.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다고 저물어가는 글로벌 시대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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