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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암 환자 ‘잔존 마약’ 관리 시급하다


미국이 ‘펜타닐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의 오남용과 중독 문제가 심각해서 ‘오피오이드 유행병(Opioid epidemic)’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

한국은 미국이 처한 상황과 다르지만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닌 듯하다. 우리나라도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은 지 오래다. 근래 필로폰이나 대마초, 신종 향정신성의약품 등 마약류 사범의 적발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보다 철저한 감시와 처벌, 투약자 치료·회복 시스템을 통해 불법 유통되는 마약들을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정부도 범부처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마약범죄와의 전쟁에 나선 상황이다.

여기서 우리가 좀 더 신경써야 할 부분이 있다. 의사 처방에 의한 의료용 마약의 관리 강화다. 말기 암이나 척추수술 환자 등의 극심한 통증 완화를 위해 마약성 진통제가 쓰이는데, 가장 흔히 처방되는 게 미국에서 문제되고 있는 펜타닐이다. 쉽게 붙일 수 있는 패치나 혀 밑에 녹여 먹는 설하정(속효성) 등 다양한 형태가 나와 있다. 정부는 2018년 5월부터 펜타닐 등 모든 마약류의 제조·수입·유통·처방·투여 등 전 과정을 모니터링하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을 구축했다. 동일한 환자가 여러 병원을 돌며 과다·중복 처방받는 사례까지 추적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완벽하게 빈틈을 막진 못하는 실정이다.

2021년 지역의 병원·약국에서 펜타닐을 처방받고 고교생에게 팔다가 경찰에 붙잡힌 사례가 있다. 당시 처방을 눈감아준 의사도 적발됐다. 또 최근엔 거짓 통증을 호소하는 방법으로 펜타닐을 처방받아 흡입한 20대 유명 래퍼가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펜타닐이 편법적 경로를 통해 한국 사회에 조금씩 영향력을 넓히는 형국이어서 NIMS를 보다 고도화하고 마약성 진통제 처방 제한, 모럴해저드 방지 교육 강화 등이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 우려되는 점은 NIMS에서 벗어나 있는 ‘잔존 마약(residual narcotics)’의 존재와 오남용 가능성이다. 특히 암 환자들이 약제 변경이나 사망으로 미사용한 마약성 진통제의 처리 상황에 대한 정보는 깜깜이다. 얼마 전 대학병원의 호스피스 교수로부터 들은 얘기다. 자신이 보는 한 말기 암 환자가 처방받은 설하정 형태의 펜타닐을 수북이 쌓아놓은 사진을 휴대전화로 보내줘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해당 교수는 환자에게 남은 약을 전부 가져오게 해 병원 내 약국에서 폐기처분토록 했다고 한다. 그는 “방치된 마약성 진통제를 환자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유출할 수도 있고 사망할 경우 가족 등 주변인에게 노출돼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잔존 마약이 국내에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한 학계의 연구나 정부 차원의 조사 자료는 거의 찾을 수 없다. 2018년 제출된 한 대학병원의 박사학위 논문이 유일했는데, 2015년 사망한 10개 암종의 마약성 진통제 지속 사용자 3명 중 1명꼴로 약의 잔여가 확인됐다. 인구 고령화로 국민 10명 중 3~4명꼴로 평생 한 번은 암에 걸리는 상황에서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은 필히 따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잔여 마약의 규모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심각성을 알고 지난해부터 약국 중심으로 가정 내 마약류 수거·폐기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예산과 동참 부족 등으로 성과가 미미하다.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회수·반납 의무가 없고 환불도 받지 못하는 관계로 환자나 가족들의 동기 부여도 작다. 병원의 참여 확대, 인센티브 제공 등 수거·폐기의 실효성을 높이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 또 처방 시 회수·반납에 대한 환자 교육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암 환자 ‘잔존 마약’에 대한 실태조사가 시급하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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