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 2004년과 2023년의 색출

태원준 논설위원


반란표의 규모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2004년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은 찬성 121표, 반대 156표로 부결됐다. 열린우리당에서 최소 35명이 반대표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박 의원은 5000만원대 금품 선거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터였고, 열린우리당은 탄핵 역풍에 힘입어 과반의석을 확보하고 있었다. 노무현의 개혁을 뒷받침하는 정당이니 부정한 정치인 처벌에 당연히 찬성할 줄 알았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자 극성스러운 당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박무’란 필명의 당원이 “체포동의안 반대 의원을 색출하자”는 제안을 당 홈페이지에 올렸고, 곧바로 긴급모임이 열려 평당원 264명의 서명이 담긴 질의서가 의원실마다 전달됐다. 체포동의안 찬·반 어디에 투표했는지, 답변을 요구하며 사흘의 말미를 줬다. 의원들의 공개 답변이 이어졌다. 처음엔 유시민 정청래 등 15명 정도였는데, 색출론이 들끓자 51명으로 불어났다. 전부 찬성표를 던졌다고 했다.

국회 비밀투표 내용을 의원들이 스스로 공개하는 초유의 행태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여러 용어가 혼재했다. 어떤 매체는 ‘커밍아웃’이란 표현을 썼고, 다른 매체는 ‘양심선언’이라 했다. ‘고백’ ‘자백’ ‘자수’라고 하기도 했다. 극성 당원들은 “이런 추세면 곧 색출된다”며 기세를 올렸는데, “마녀사냥”이란 반발이 커지면서 흐지부지됐다.

20년이 흘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을 놓고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민주당에서 최소 31명 반란표(이번엔 찬성표)가 나오자 그의 극성 지지자들이 색출에 나서면서 의원들의 커밍아웃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색출에 담긴 분노의 내용이 완전히 달라졌다. “범죄 혐의자를 왜 비호했느냐”(2004년)던 것이 “범죄 혐의자를 왜 비호하지 않았느냐”(2023년)가 됐고, “이게 개혁이냐”던 항의는 “누가 수박이냐”로 바뀌었다. ‘반(反)개혁 의원’에서 ‘반(反)이재명 의원’으로 변모한 색출의 대상. 진보 정치 팬덤이 가치를 좇던 집단에서 사람을 추앙하는 세력으로 변질됐음을 말해준다.

태원준 논설위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