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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정순신 낙마 사태의 이면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뒤 인사 검증 실패를 두고 정치권이 연일 시끄럽다. 국민도 허술한 검증에 황당해하고 있지만 관심의 초점은 조금 다른 데 있는 듯하다. 어쩌면 그런 관심이 이번 사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번 일이 불거졌을 때 네티즌들은 ‘힘 있는 부모’를 둔 학생의 비위를 쉬쉬하지 않은 학교와 그 지역 학폭대책자치위원회에 주목했다. 대다수 국민은 법이나 소송을 두려워하고, 특히 검사한테 겁먹기 마련인데 학폭위 위원들과 교사들은 그걸 이겨내고 아주 강단 있게 증언했다.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올곧음이 느껴진다. 한 위원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은 정말로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면서 가해 학생의 사과문이 의례적이란 이유를 들어 반성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학교 교사는 “급우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모습에 굉장히 충격받았다. 우리가 선도하려 해도 부모가 막고 있다. 학교에서 교육적 조치를 강구하겠지만 성공할 보장은 매우 낮다”며 전학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

피해 학생은 학폭위에 “죽을 생각밖에 안 들었다. 힘든 학교인데 학폭까지 당하니 내가 참고 전학갈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설득해주셔서 신고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네티즌들은 진실 규명과 약자를 위해 ‘힘이 돼준’ 친구·선생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러면서 “학교와 학폭위 수준이 (김건희 여사 논문 심사 결과 문제없다는) 국민대보다 백 배는 높다”고 지적했다.

가해자가 ‘아빠가 아는 사람이 많은데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에 분노하는 이들도 많았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또 힘 있는 사람들만의 짬짜미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분노였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딸의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다’라는 말이 떠올려진다는 글도 있었다. ‘판사와 친하면~’이란 대목도 철없는 아들의 허무맹랑한 아빠 자랑일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게 더 현실과 가까운 게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관예우니 사법연수원 동기니, 아무개 법대 동기니 하는 이른바 ‘연줄’이 법조계에서 여전히 먹히고 있지 않은가.

제주도 출신인 피해 학생은 ‘돼지라 냄새난다’ ‘빨갱이’라고 괴롭힘을 당했다. 이를 두고 한 네티즌은 “제주 사람인 원희룡 장관이 한마디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원 장관도 빨갱이냐”고 따졌다. 무엇보다 4·3사건 등을 둘러싼 비뚤어진 색깔론이 자칫 청년세대로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유튜브에선 색깔론을 조장하는 극우 논객의 영상이 쏟아지고 있다.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접하는 언론 매체와 콘텐츠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역사 인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다시금 일깨워준다.

법은 결코 만인에게 공평하지 않고 틈새를 잘 활용하거나 악용하는 이들에게 훨씬 더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걸 알게 됐다는 지적도 많았다. 과거 현직에 있던 검사가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언론사 기고문에서 ‘피의자로 조사받을 때 불리하면 가급적 묵비권을 행사하고 조서에 날인을 거부하라’는 팁을 알려줘 응원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몇 년 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아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형사소송법에 있는 권리라며 ‘증언 거부’를 했는데, 극소수만 알던 재판 대응 노하우였다. 이번엔 학폭 소송이 처벌을 늦추기 위한 시간벌기와 대입 전형에 악용될 수 있음을 온 국민이 새로 학습하게 됐다. 여전히 허점과 틈새가 많은 게 우리 법 현실이다. 정 변호사 아들을 합격시켜준 서울대에 대한 비난도 있지만 서울대마저 감쪽같이 당했다며 안타깝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일을 계기로 힘 있는 사람들이 더 겸손해져야 하고, 법조계는 더 투명해져야 하며,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힘센 사람들부터 그 당연한 걸 지키지 않기에 늘 문제가 발생한다. 거기에 더해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진실이 은폐되지 않도록, 또 곤궁에 처한 약자를 위해 평범한 시민들이 용기 있는 증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이 두 눈 부릅뜨고 있으면 불의는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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