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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

라동철 논설위원


계간문예지 ‘세계의 문학’ 1987년 여름호에 발표된 중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문열 작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반을 시대 배경으로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부조리한 권력관계를 그려낸 작품으로, 발표된 그해 11월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1992년엔 소설의 결말을 비튼 같은 이름의 영화가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제3회 춘사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고 이듬해엔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과 작품상, 감독상, 특별상 등 많은 상을 휩쓸면서 원작이 다시 큰 화제를 모았다.

소설은 좌천된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작은 읍 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5학년 한병태란 아이가 독재자가 군림하는 학급의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했지만 끝내 굴복하고 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병태의 반에는 또래들보다 덩치가 큰 엄석대라는 반장이 자신의 왕국을 구축하고 있었고 자신에게 도전하는 기미가 보이면 온갖 강압과 교활한 수법을 동원해 응징했다. 담임선생이 반장의 전횡을 비호하자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완전히 제압돼 체제에 순응했고 어떤 아이들은 반장의 측근을 자처한다. 하지만 학년이 바뀌고 새로운 담임선생이 엄석대의 ‘권위’를 용납하지 않고 제지하자 숨죽이고 있던 학생들은 너도나도 반장의 비행을 털어놓기에 바빴고 공고해 보이던 그의 왕국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린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3일 국회 소통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거론하며 “소설 속 시골 학급의 모습은 최근 국민의힘 모습과 닿아 있다”고 했다. 엄석대가 누구라고 밝히지는 않았으나 윤석열 대통령과 소위 윤핵관들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란 해석이 많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민주당보다 더 한 짓” “민주당의 2중대” 등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 전 대표의 비유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은 과연 없을까. 더불어민주당에도 엄석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목소리가 있다. 당내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최소한의 상식과 염치가 사라졌다는 지적을 받는 제1, 2당의 현실이 엄석대를 소환한 것은 아닌지.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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