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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디지털 시대의 학교폭력, 패러다임 바꿔라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최근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화제가 되고 고위직 임명 과정에서 자녀 문제가 불거지면서 학교폭력이 사회적으로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많은 국민이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깊이 공감하면서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대책을 수립할 때에는 학교폭력의 실태와 변화 추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드라마 속의 폭력 장면은 이미 수십년 전의 학교 모습이고, 현실의 학교폭력은 그 양상이 많이 진화해 왔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교육부에서 강력한 대안으로 처음 내놓았던 2012년 ‘학교폭력 근절 대책’ 시행 이후 10년이 넘게 흐르면서 세상은 많이 변화했다. 가장 눈에 띄는 학교폭력 유형 변화는 신체폭력 발생 건수가 줄어들고 사이버폭력, 언어폭력과 집단 따돌림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강력한 학교폭력 대응책이 발표되면서 눈에 보이는 신체폭력이 줄어들었지만 보이지 않는 유형으로 변화하는 모습이다. 신체폭력은 가시적으로 상처가 보이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이뤄지는 언어폭력과 따돌림은 오랫동안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학교폭력의 양상이 더욱 가시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을 필두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세계를 강타했고,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디지털 대전환을 가속화시켰다. 학교에 가는 대신에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학생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생활하는 시간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됐고 사이버폭력 비중이 빠르게 증가했다.

2022년에 푸른나무재단에서 발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이버폭력의 비중은 31.6%로 나타났는데 2020년 16.3%의 2배에 달하고, 2019년 5.3%에 비해서는 약 6배가 증가한 수치다. 사이버폭력은 범죄 공간이 온라인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 안에서 나타나는 폭력의 유형은 오프라인과 유사하다. 다양한 언어폭력, 집단 따돌림, 금품 갈취, 강요, 성폭력 등이 모두 나타나고 있다.

사이버폭력이 발생하는 공간과 폭력의 유형도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SNS 감옥’ ‘방폭’ ‘떼카’ 등의 유형은 그간 지속돼 온 사이버폭력 유형이다. 최근에는 여성인 척 접근해 동급생의 신체사진을 요구한 뒤 SNS를 통해 해당 사진을 유포하는 범죄도 발생한 바 있다. 사진을 찍어 개인 정보와 함께 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유포하는 행위, 학생을 대상으로 포르노를 촬영해 유포하는 범죄, SNS나 채팅 앱을 통해 피해자를 물색하고 피해자들의 어린 나이나 경제적 빈곤 등과 같은 취약함을 이용해 지배 관계를 형성하는 온라인 그루밍 범죄까지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이화여대 미래교육연구소의 면담조사 결과에 따르면 랜덤 채팅을 통해 알게 된 학생들 사이에서 실제 폭력으로 연결된 사례, 온라인 도박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례, 중고거래 등을 통해 금품을 갈취한 사례 등 새로운 유형의 사이버폭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세상에서 아이들의 삶이 변화함에 따라 학교폭력의 유형과 양상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현행 법령에는 학기별 1회 이상의 학교폭력 예방교육이 의무화돼 있다. 학교폭력 예방교육이 유명무실하게 시간 때우기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고 내실화해야 한다. 교육 내용도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언어폭력과 따돌림 등을 새로운 유형의 학교폭력에 포함해 새롭게 구성하는 등 예방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학생, 학부모, 교원 모두가 새로운 학교폭력 양상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아이들을 학교폭력 위험에서 보호할 수 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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