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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아버지 되기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아버지는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숙제다. 답을 찾을 수도 없다. 엄하기만 하고 대화는 통하지 않는 벽. 속을 알 수 없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무표정에 피곤해 보이는 모습. 사람 업신여기지 말아라, 겸손해라 등 십계명 같은 규율들. 어쩌다 아버지에 대한 느낌과 생각이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기억하긴 어렵다. 어렸을 때는 늘 산이며 강에 데리고 다니고 잘 놀아주기도 했는데, 사춘기부터였을까.

개인에 따라 아버지의 모습은 다르기에 일반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 중·장년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아버지는 대체로 이런 모습이다. 자식 낳아 키우면 부모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다지만 글쎄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해되면서 존경스럽기도 하고 오히려 마음이 복잡하다. 아버지처럼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행동과 말을 무의식중에 했다는 걸 느낄 때면 헛헛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근 40년이 됐는데도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숙제를 알고 있는 듯 얼마 전 ‘절친’ 중 한 명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며 정지아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손에 들려줬다. 빨치산이던 아버지의 장례 이야기다. “내가 알던 아버지는 진짜일까? 미스터리 같은 한 남자가 헤쳐온 역사의 격랑”이라는 뒤표지 글은 흥미를 불러왔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라는 첫 부분을 읽으면서 주인공은 지독히 아버지를 싫어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딸의 회상과 문상객이 들려주는 아버지 이야기로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그려간다. 전혀 알 길 없던 아버지의 일상에서 딸은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쓰러져가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용기를 주려 했던 아버지를. 그리고 아버지를 놓아준다. 소설은 시종 유쾌하다. 그러나 계속 마음을 흔든다. 마지막엔 기어이 눈물을 선물한다. 쉽게 읽히지만 쉽지 않았다.

요즘 아버지는 대체로 예전과 다르다. 자녀 양육과 교육에 적극 참여한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길 바라면서 아이에게 애정을 쏟는다. 문제는 내 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지위가 남다를수록 자녀에게 특권의식을 심어주는 경우가 많다. 훈육해야 할 상황을 오히려 돈과 지위로 무마시키려고도 한다. 최근 검사였다가 변호사를 하는 어떤 인사가 한 파렴치한 짓을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포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암담하다. 돈으로 지위로 인간관계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아버지의 모습에서 체득해버린 아이가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정상 생활을 하게 될지 의문이다. 지역과 신분으로 사람들을 차별할 것이고,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며, 선입견 속에서 잘못된 판단을 할 것은 불문가지다. 이걸 보편적 가치로 여길지도 모른다.

오수창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는 이 일이 알려진 후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요즘 특권층의 행태가 조선 말기 세도정치와 일치한다고 진단했다. “세도 정치가들은 권력을 독점하면서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했다”며 “요즘 국가권력의 최고 엘리트들은 나라의 권력을 독점했지만 세상 돌아가는 실상과 괴리돼 있다”고 지적했다. 가치를 말로만 앞세우고 내실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게 된 원인 제공자는 세도 정치가였다.

내 자식에게 무엇을 주었고, 지금 어떤 걸 주고 있는지 두렵다. 다만 내가 가진 숙제를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은 시간을 잘살아야겠지만.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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