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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셔틀 외교

전석운 논설위원


셔틀(shuttle)은 옷감을 짜는 베틀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북이다. ‘셔틀 버스’ ‘셔틀 노선’ 등 일정한 장소 두 곳을 정기적으로 왕복하는 교통수단을 비유하는 말에 셔틀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인다. ‘셔틀 외교’는 제3의 중재자가 직접적인 교섭을 기피하는 두 당사자 사이를 오가며 협상을 이끌어내는 외교 활동을 뜻한다. 1974~75년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이 제4차 중동전쟁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이집트, 시리아를 오가며 평화협상을 끌어낸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한·일 셔틀 외교는 양국의 정상들이 중재자 없이 직접 대면하는 정상회담을 정례화한다는 점에서 키신저의 셔틀 외교와는 다르다.

1974년 1월 11일 이집트로 날아간 키신저는 이집트-이스라엘 간 철군 협상을 중재하느라 1주일 내내 이집트와 이스라엘 두 나라를 왔다갔다 해야 했다. 같은 해 5월 시작된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 철군 협정은 더 까다로워 타결짓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같은 해 9월에는 닉슨게이트의 파장으로 미국 대통령이 제럴드 포드로 바뀌는 와중에 아랍국가들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독립 국가 지지를 선포하면서 키신저의 중재안은 위기에 빠졌다. 포드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압박하기 위해 외교정책 수정을 시도했다가 미 상원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이를 번복하는 등 키신저의 협상 중재 노력은 곳곳에서 암초를 만났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오는 16~17일 도쿄에서 갖는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12년 만에 셔틀 외교를 복원한다고 한다. 한·일 셔틀 외교는 2004년 시작됐다가 2011년 12월 이후 중단됐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강제징용과 위안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반도체 수출 규제 등 주요 현안들에 대한 일괄타결이 성사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독도 영유권 문제와 신사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등 양국 간 묵은 갈등을 자극하는 일이 벌어지면 셔틀은 언제든 좌초될 수 있다. 셔틀 외교의 복원은 한·일 관계 정상화의 시작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전석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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