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교회 안에 피어나는 곰팡이


부패한 교회를 개혁하려고 일어선 종교개혁 진영은 엉뚱한 복병을 만나게 됩니다. 개혁자들의 구호인 ‘복음의 자유’를 빌미로 내부에서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개혁자들은 복음의 자유와 값없는 은혜를 외쳤지만 현장에선 교리의 오해와 오용으로 이어졌습니다.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율법의 모든 기능이 철폐됐고 세상 질서는 이제 무시해도 되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게다가 개신교 목회자들의 부패와 게으름, 교리에 대한 무지가 만연해서 도저히 성직자라고 할 수 없을 만큼의 도덕적 해이, 방종의 상태가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목사가 이런데 일반 신자들은 오죽했을까요. 신앙과 삶의 규칙은 모든 면에서 더욱 엉망이 돼갔습니다. 종교개혁 이전 같으면 주교의 올곧은 말 한마디로 기강을 잡을 수 있겠지만 가톨릭을 반대하고 일어선 개신교 진영엔 그런 ‘권위적 주교권’은 통용될 수 없었습니다.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작센의 영주 요한 프리드리히는 바이마르에서 루터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편지를 쓰기에 이릅니다(1524년 6월). 자기가 도울 테니 제발 교회를 직접 돌아보고 얼마나 형편없는 목사들이 목회 현장에 있는지 보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목사로서 부적격한 자들은 제발 쫓아버리든지 해임시켜 달라”는 요청이 거기 담겨 있습니다.

편지를 받아든 루터는 곧바로 교회 시찰을 시작합니다. 몇 년에 걸친 일종의 암행감찰 업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찰 결과는 처참했지요. 시대를 막론하고 부패한 성직자는 언제나 있었지만 종교개혁 사상의 잘못된 이해는 이런 목회자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 돼버렸습니다.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모든 제약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 꼴이 되어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교회의 권징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목회직에 대한 거룩한 소명감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수입이 일정치 않아 불안정한 목회직보다 권력자에 붙어 아부를 주업으로 삼는 정치꾼 목사들, 술집을 운영하다가 주정뱅이가 되어 버린 목사, 삶 자체가 방탕하고 문란한 목사 등등 도저히 목사라고 말할 수 없는 인간들이 도처에서 개신교 진영을 좀 먹고 있었습니다.

목사들이 그 정도니 일반 신자는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시찰을 마친 루터가 친구 슈팔라틴에게 이렇게 편지합니다.(1529, 2월) “농민들은 (목회자에게서) 아무것도 배운 게 없으니 당연히 아는 것이 없고 게다가 자신들이 선물로 받은 자유를 함부로 남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마치 신앙 없는 사람처럼 기도도 하지 않고 죄를 고백하거나 회개가 뭔지도 모르고 성찬에 참례하지도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교인들이 과거엔 교황을 우습게 여겼지만 이젠 우리(목사)를 우습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루터와 개혁가들은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극약 처방을 내립니다. 시찰단을 조직해 교회 현장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가망 없는 목사라고 판단되면 아예 개신교 지역에서 쫓아버리고 모든 교인의 신앙을 뿌리부터 든든하게 만들려고 보편 교육을 강력하게 시행하게 됩니다. 시찰단의 강력한 운용과 교육의 혁신은 결국 개신교 진영이 한 단계 도약하는 발판이 됩니다.

500년 전 역사지만 옛날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운 시대입니다. 사회면 톱기사를 장식할 만한 문제를 일으켜도 교단 내부의 징계는 거의 없다시피 한 현실이 그렇고, 연구는 안하면서 논문 표절이나 하고 교회는커녕 제 밥그릇만 챙기는 신학대학 교수들이 그렇습니다. 교회 강단에선 복음이 넘쳐나지만 정작 교인들은 죄책감만 더 커집니다. 우리 시대 한국교회 현실입니다.

‘역사란 시대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패한 교회를 개혁하고자 일어났던 교회에 곰팡이가 피어올랐을 때 역사는 어떤 해답을 주나요. 교회가 자정의 노력 속에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불 보듯 뻔합니다.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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