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자본주의가 지워버린 ‘시민’을 다시 부른다

[책과 길]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마이클 샌델 지음, 이경식 옮김
와이즈베리, 440쪽, 2만원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 2020년 ‘공정하다는 착각’으로 샌델 바람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정치철학 교수. 뉴시스

2010년 이후 한국 사회를 달군 정의와 공정 열풍을 말할 때 마이클 샌델(미국 하버드대 정치철학 교수)이라는 이름을 빼놓기는 어렵다. 2010년 출간된 샌델의 대표작 ‘정의란 무엇인가’는 2010년대 전체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였고, 2020년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책 ‘공정하다는 착각’은 또 한 번 샌델 바람을 일으켰다.

새로 나온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는 현재의 정치와 민주주의가 왜 불만의 대상이 되었는지 탐구한다. 샌델은 정치(민주주의)와 경제(자본주의)가 서로 공존하며 갈등해온 미국 역사를 돌아보면서 1980년대 이후 힘의 균형이 경제 쪽으로 크게 쏠린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정당한 불만’이라고 평가한다. 불만이 표출되는 방식이나 결과는 문제적일 수 있지만, 그들이 가진 불만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샌델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의 경제를 특징짓는 세계화, 금융화, 능력주의는 경제적 불평등만 초래한 게 아니라 정치적 불평등도 낳았다. 경제적 불평등은 두 가지 측면에서 민주주의를 잠식했다. 소득 최상위층이 자기가 가진 부를 이용해 정부의 대의 장치를 자기들 손아귀에 넣었다. 또 성공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조작했는데, 능력주의가 그것이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됐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안겼다.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는 정치에서도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없었다. 샌델은 “사회의 엘리트들, 특히 민주당의 엘리트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의 자리로 나아가는 길을 닦은 대중의 분노에 자신들의 통치 방식이 어떻게 기여했는지 알고자 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포퓰리즘적 분노의 연료였던 대중의 불만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면서 그저 “참으로 한심한 인간들”이라고 비난했다는 것이다.


대중은 일자리 감소, 임금 정체, 불평등 증가, 엘리트들의 무시 등에 대해 불만을 쌓아가고 있었지만 정치는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이런 불만들을 의제로 다루지 않았다. 경제 권력과 논리가 정치를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대중의 불만은 2016년 트럼프 당선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표출됐다. 이런 설명은 트럼프가 왜 당선됐는가에 대한 매우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민주당이 어떤 함정에 빠져 있는지도 알게 한다.

샌델은 1980년대 이후 세계화된 자본주의가 정치와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킨 과정을 묘사한다. 정치적으로 결정해야 할 수많은 선택들이 시장 논리에 맡겨졌다.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지지는 약화됐다. 대중은 점점 더 자신을 노동자와 소비자로 규정하면서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1980년대 이후에 일어난 변화다. 샌델은 경제 권력이 정치에 의해 통제돼야 한다고 믿었던 과거를 불러낸다. 정치가 경제 권력을 통제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실현하는 전통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실종됐지만 미국의 역사 속에서는 뚜렷하다. 8시간 노동제, 체인점 금지 운동, 반독점운동 등이 그런 담론들에 속한다.

샌델은 오늘날의 대중은 “경제 권력이 시민적 삶에 초래하는 결과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익숙하지 않다”면서 ‘경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민주적 시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 책은 샌델이 1996년에 출판한 ‘민주주의의 불만’의 개정판이다. 원문을 수정하고, 1990년대 이후 흐름을 새로 정리한 7장을 추가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