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 세상을 통과해야 하는 열두 살 ‘나’의 이야기

[책과 길] 사랑의 꿈
손보미 지음
문학동네, 396쪽, 1만6500원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 오후에 내가 열기에 열기를 더한 거라고, 그건 아주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공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던 불! 그 장면은 눈 앞에서 선명하고 집요하게 계속해서 떠올랐다.”

손보미(사진)의 소설집 ‘사랑의 꿈’에 수록된 단편 ‘불장난’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바뀌면서 변화된 상황을 통과해야 하는 열두 살 ‘나’의 이야기다. ‘나’의 두 가지 과제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달라진 새 가정에 적응하는 것, 그리고 같은 반 아이 양우정에 대한 소문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양우정과 그의 무리가 청소를 맡은 숙직실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한다는 소문과 달리 ‘나’의 눈에 들어온 건 음악에 맞춰 워킹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후 ‘나’는 어느 날 침대 밑에서 아버지의 라이터를 발견하고 불장난을 시작한다. 금기를 위반하는 ‘나’는 “착각과 기만, 허상을 디뎌야지만 도약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손보미는 5년 만에 낸 이번 소설집에서 다양한 나이의 10대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밤이 지나면’에서 열 살인 주인공은 경기도에 있는 외삼촌 부부에게 맡겨졌던 첫해의 일을 그린다. ‘첫사랑’과 ‘이사’는 과외 선생과의 강렬한 만남으로 주인공이 겪게 되는 변화를 담았다. 이번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3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사랑의 꿈’은 아이를 떠나 도망치고 싶었던 한 여자의 이야기다. ‘작가의 말’에서 손보미는 “다른 건 몰라도, 이 소설들을 쓰던 시간은 다른 누군가의 변덕스러움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는데, 그것들은 온전히 나의 변덕스러움이 선택한 세계였다”며 “때때로는 신이 났고, 때때로는 좌절했으며, 때때로는 현기증이 났다. 내가 통과한 시간들을, 이렇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무언가로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손보미는 2009년 ‘21세기 문학’ 신인상과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과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 ‘작은 동네’ ‘사라진 숲의 아이들’, 중편소설 ‘우연의 신’ 등을 썼다. 한국일보문학상, 김준성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제3회 젊은작가상 대상과 제4·5·6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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