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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우리는 저작권과 무관할까?

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장


‘빅 아이즈’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 화가 마거릿 킨은 1986년 남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이 내용은 2014년 팀 버튼 감독의 영화로도 소개된 바 있다. 남편 월터 킨은 여성 작가의 그림은 잘 팔리지 않는다며 마거릿을 유령작가로 만들고 수십년간 작품을 가로채왔다. 마거릿은 남편에 맞서 저작권을 지키기 위한 소송을 했다. 월터는 마거릿과 전남편 사이의 딸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을 가했다. 그러나 작품을 지키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우리의 육체가 유전자로 자녀를 만든다면, 정신은 사색을 통해 창작물을 만든다. 부모와 그의 분신인 자녀가 ‘친권’으로 연결돼 있는 것처럼 창작자와 그의 작품은 ‘저작권’으로 이어져 있다. 친권이 가족과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가 되듯 저작권은 한 사회의 창조성과 그 위에 꽃 피는 문화의 기반이 된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마거릿의 시대보다 문화예술과 여성 인권이 진일보한 사회이고 콘텐츠 강국이다. 2021년 콘텐츠 산업 수출액이 가전제품과 전기차 수출액을 상회하며 124억 달러를 돌파했고, 문화예술저작권 무역수지 역시 역대 최고 흑자인 6억 달러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이는 데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전 세계가 K드라마와 K팝의 나라를 선망하고 있다.

하지만 창작자를 울리는 불공정 계약과 불법 무료 스트리밍 사이트, 대학 교재의 불법 스캔 등 저작권이 존중받지 못해 생긴 안타까운 일들이 여전히 생겨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창작자의 자아 상실과 창작 활동 위축이라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큰 손실을 낳고 있다. ‘누누티비’로 인한 피해액이 5조원에 달한다는 추산이 나왔고, 한국 학술 출판계의 미래가 어둡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높다.

K콘텐츠 강국의 저작권 보호 과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공지능(AI)과 웹 3.0 시대가 도래하며 초등학생도 메타버스에서 만든 개성 있는 아바타의 저작권자가 되는가 하면, 챗GPT 등 생성형 AI가 쓰고 그린 글과 그림이 누구의 저작물이 되는가 하는 숙제도 생겼다. 새 형태의 창작물도 쏟아진다. 저작권과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미래는 점점 더 창조성이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저작권 보호 수준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필수지표가 된다.

문화 매력 국가의 위상에 걸맞게 저작권 보호 역량과 저작권 존중 문화를 갖춰야 한다. 저작권 보호의 개념과 범위를 확장하고, 다가오는 미래의 저작권 문제에도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특히 ‘저작권 침해 대응의 디지털화’ ‘해외 저작권 보호 강화’ ‘생활 속 저작권 보호 홍보·지원’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은 이런 기조에 발맞춰 저작권 침해를 자동으로 모니터링하고, 수집한 빅데이터를 유관기관과 공유하는 자동화된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미국영화협회(MPA) 등 주요 민간단체 그리고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와 각국의 행정기관 및 수사기관들과 협력망을 확대하고 있다. 일상 속 저작권 보호를 통한 범국민 인식 개선 사업의 확장을 위한 준비도 창작자들의 의견을 들어 추진한다.

저작권 보호 주체는 보호원만이 아니다. ‘아름다운 문화의 나라’에 사는 우리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글로벌혁신정책센터의 국제지식재산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저작권 분야에서 55개 조사국 중 7위를 했다. 충분히 우수한 성적이지만 근시일 내 1위를 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다. 4월 23일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4월 26일은 ‘세계지식재산권의 날’이다. ‘도둑 시청’과 ‘불법 스캔’ ‘불공정 계약과 창작 중단’ 뉴스가 옛말이 되고, 저작권 이용과 보호가 창작자와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닌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 된 저작권 보호 선진국 대한민국을 꿈꿔본다.

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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