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여의춘추-손병호

[여의춘추] 尹의 징용 결단, 盧의 FTA 결단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대일외교 성과 놓고 지리한 공방
징용 해법 미흡한 게 사실이나
단절된 관계 전환한 건 큰 성과

매국이라던 FTA체결 반전처럼
대일외교 섣부른 비판 자제하고
시간 지나 냉정히 평가할 필요

日 사죄와 가해기업 배상 문제
관계 개선과 맞물려 앞으로도
계속 더 좋은 결과 빚어내길

지난 2개월간 윤석열 대통령이 매머드급 외교 일정을 치렀다. 일본과 정상회담을 세 차례 하고, 미국을 국빈방문했으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미·일 3자 회담도 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에서도 그랬다. 국민의힘은 ‘역대급 정상외교’라고 극찬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자아도취 외교실패’라고 조롱했다. 특히 외교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한·일 문제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선 ‘매국’ ‘밀정’이란 거친 말이 끊이지 않는다.

여당이 앞장서 역대급 정상외교라고 한 것도 민망하지만 자아도취 외교라는 야당의 평가도 박하기 짝이 없다. 특히 윤 대통령의 대일외교에 있어선 미흡한 면도 분명히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성과라 할 수 있는 것들도 적지 않다. 우선 지난 5년간 ‘냉각’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단절’됐던 한·일 관계를 전환시킨 것 자체가 잘한 일이다. 그것도 아주 단기간에 해냈다. 윤 대통령이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모두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는 듯 보이고, 둘 모두에게서 양국 관계를 더 좋게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그런 태도의 문제 말고도 반도체 수출규제 해제, 화이트리스트 복원 추진, 양국 경제계 협력, 인적교류 활성화 등의 실질적인 성과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다만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해 가해 기업의 직접 배상이 아닌 제3자 배상 방식으로 피해 배상을 하기로 한 게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안은 지금 평가할 게 아니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제일 좋은 건 가해 기업이 직접 배상하는 것이지만 피해자 단체도 그게 당장 이뤄지리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 지도자의 진심 어린 사죄와 가해 기업의 간접 배상이 있으면 나쁘지 않겠다는 기류가 있었다.

사죄와 관련해선 기시다 총리가 3월 정상회담 때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비롯한 ‘역대 내각 입장을 계승한다’고 밝혔다. 5월에 방한해서는 피해자들을 향해 ‘매우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한 데 대해 가슴이 아프다’는 입장도 내놨다. ‘사죄’라는 단어가 있느냐 없느냐만 보면 사죄가 아니라 할 수 있겠으나 기시다 총리로선 상당한 성의를 보였다. 사죄의 6부 능선, 7부 능선쯤은 돼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끝일까. 일본의 사죄와 가해 기업의 배상은 ‘현재진행형’으로 흘러갈 수도 있으리라 본다. 정상 간 우정이 더 깊어지고 셔틀외교가 잦아지면 사죄에 버금가는, 어쩌면 일본 총리가 피해자를 만나는 것 같은 사죄 이상의 파격적인 일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다. 요즘 양국 경제단체도 바짝 밀착하고 있는데, 그 협력이 더 긴밀해지다 보면 가해 기업도 배상에 ‘관여’하는 쪽으로 자연스레 발을 들여놓을 여지가 있다.

2007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에 즈음해 담화문을 발표했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3월 한·일 정상회담 뒤 귀국해 발표한 입장문과 흡사한 대목이 많아 적잖이 놀랐다. 노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당장의 이익에 급급한 작은 장사꾼이 아니라 세계 시장의 변화까지 내다본 안목으로 결단했다’고 했다. 또 ‘정치적 손해를 무릅쓰고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도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편한 길을 가지 않았다’고 말했고, ‘엄중한 국제 정세까지 내다보고 내린 결단’이라고 호소했다. 노 대통령은 ‘FTA는 어느 한쪽이 손해보는 구조가 아니라 양쪽에 다 이익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 역시 ‘한·일 관계 개선이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서로 윈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 대통령 모두 어렵게 내린 결정임을 토로하면서 ‘우리 국민을 믿는다’며 기존 생각에서 벗어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자고 호소한 대목도 마찬가지다.

당시 노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내가) 매국한다고 비판하더라’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억울한 일을 당한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윤 대통령의 대일외교와 징용 해법도 그 결과를 좀 길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시작은 7부 능선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정상에 가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시간이 흘러서도 한·일 관계가 더 나아지지 않거나 과거사와 피해자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때 윤 대통령을 비판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야당이든, 반대하는 국민이든 지금 대통령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좀 성급한 일인 것 같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