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스포츠

연예·스포츠 > 연예

[And 문화] “먼저, 상대방 말을 듣고 말해야 바른 말을 할 수 있죠”

[창·작·가]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박동훈·최하나 감독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의 박동훈(오른쪽), 최하나 감독이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 감독은 “어떤 게 바른 말인지 정의하긴 쉽지 않지만 바른 말이 아닌 것들은 자주 목격한다. 우선 상대방의 말을 듣고 말해야 바른 말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한형 기자

“아빠, 요즘 사람들 본적(本籍)이 뭔지도 몰라.”

손주의 출생지를 두고 아버지(정승길)와 딸(조윤서)이 입씨름 중이다. 딸은 남편이 일하고 있는 광주로 가서 아기를 낳겠다고 하고, 아버지는 지역감정의 유구한 역사를 늘어놓으며 반대한다. 아버지가 시대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한다며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비난하던 딸은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에게 반감을 드러낸다.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말바말)가 지난 17일 개봉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며 배제하는 다양한 관계의 ‘웃픈’ 갈등을 보여주며 우리 사회의 허위와 모순을 통찰한다. 등장 인물들은 누가 더 악덕한지, 누가 더 무책임한지, 누가 더 위선적인지, 누가 더 무례한지를 다툰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말바말’의 에피소드 중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를 연출한 박동훈 감독, ‘진정성 실전편’을 연출한 최하나 감독을 만났다.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의 포스터.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최 감독은 “윤성호 총괄감독이 ‘주어진 제약 안에서 각자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했다. 제약이 있을 때 창의성이 만들어지는 면이 있고, 제약이 없으면 감독들이 잘 하고 싶은 마음에 사비를 쓰는데 그런 상황을 막고 싶었다고 하더라”며 “과도하게 욕심부리지 않도록 일종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은 거다. 그 제안에 솔깃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가 실시한 쇼츠 챌린지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촬영시간은 6시간을 넘기지 말 것, 하나의 장면으로만 구성할 것, 3명까지 출연할 수 있지만 대화는 두 사람만 할 것, 사회적인 이슈를 다룰 것’ 등 조건을 설정한 뒤 6명의 감독이 각각 10분 분량의 작품을 선보였다.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를 만든 윤 감독이 연출을 총괄하고 박 감독과 최 감독을 비롯해 김소형 송현주 한인미 감독이 참여했다.

‘말바말’은 하이브리드 소셜 코미디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왔다. 이 구분에 대해 박 감독은 “다양한 감독들의 개성이 가장 적절하게 반영돼 있어 ‘하이브리드’,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소셜’, 관객들을 웃길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해서 ‘코미디’라고 한 것 같다”며 “기존의 옴니버스 영화와 차별화를 추구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전작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2022)에서 탈북한 수학자와 고등학생의 따뜻한 우정을 그린 박 감독은 지역 혐오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녹여 이번 에피소드를 연출했다. 그는 “미국 유학 중이던 1997년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두고 ‘다행이네요’라고 말했다가 ‘전라도 출신이냐’는 질문을 다섯 번 이상 들었다. 충격적이었다”며 “‘아닌데요’라고 답하면서 찜찜하고 비겁한 기분이 들었고 ‘이 이야기를 언젠가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돌이켰다.

이어 “내가 어렸던 1980년대만 해도 호남 차별이 일종의 공기같은 거였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대학생 형들조차 ‘전라도 사람이 왜 저열한지’에 대해 강의했다”면서 “90년대부턴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그 때 들은 거다. 그들은 그런 말을 해도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기억을 되짚었다.

부녀의 대화 주제는 지역 차별에서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일명 ‘엘사’ 논란으로 이어진다. 박 감독은 “과거에 만들어진 차별과 배제, 고정관념에서 이야기가 끝나면 안 되고 지금도 그런 것들이 이어진다는 내용으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의 각 에피소드 스틸사진. 스틸사진 왼쪽 두 개는 '진정성 실전편', 오른쪽 두 개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영화는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가 실시한 쇼츠 챌린지 프로젝트로 '촬영시간은 6시간을 넘기지 말 것, 하나의 장면으로만 구성할 것, 3명까지 출연할 수 있지만 대화는 두 사람만 할 것, 사회적인 이슈를 다룰 것' 등 조건을 설정한 뒤 6명의 감독이 각각 10분 분량의 작품을 선보였다.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최 감독의 에피소드는 젠더 갈등을 다뤘다. 반려동물 수제 간식 ‘멍냥짭짭’을 판매하는 한 중소업체가 SNS 광고에서 강아지가 허겁지겁 밥을 먹는 모습을 ‘허버버법’이라고 표현했다가 남성 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허버버법’이 소위 ‘남성 혐오 단어’라고 지목받은 ‘허버허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마케팅팀장과 팀원이 사과문을 작성하며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해명의 진정성을 어떻게 증명할지 머리를 싸매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버허버’는 남성 혐오 표현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보람씨가 쓴 말은 ‘허버허버’가 아니라 ‘허버버법’이잖아요.”

페미니즘, 젠더 이슈는 민감한 소재다. 에피소드 내용과 비슷한 사건들이 2021년에 실제로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는지 물었다.

최 감독은 “‘이 작품을 했다가 공격 당하려나’ 생각도 했다. 그래도 재밌는 얘기를 하고 싶었고, 이것보다 재밌는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면서 “특정 단어를 썼다고 해서 남성 혐오자로 매장 당하는 상황 자체가 코미디인데 이걸 찍어서 매장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우스꽝스럽고 굴욕적이었다.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한된 조건 안에서 촬영하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박 감독은 “제한이 매력적이어서 재밌게 돌파해보자고 생각했고, 정신없긴 했지만 즐거웠다. 평소에도 여유있게 찍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힘들진 않았다”며 “촬영팀, 조명팀 등은 6개 에피소드에 모두 참여했다. 전날 밤까지 다른 작품을 촬영했다는 걸 알기에 현장에서 스태프들을 위한 ‘고오급 도시락’에 신경썼다”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말바말’의 대사는 코미디의 옷을 입고 가차없이 간담을 찌른다. 관객을 향해 웃으면서 신경질을 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감독은 “윤 감독이 영화를 제안하면서 ‘을과 병이 정을 밀어내는 이야기’라고 했다. 노키드존처럼 세련된 방식으로 약한 사람을 미끄러트리는 것”이라며 “메시지만 좋은 게 아니라 재밌고 말맛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고 했다.

최 감독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박 감독의 에피소드가 상영될 때 조윤서 배우가 ‘임대주택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순간 흐르던 정적, 그 공기가 인상적이었다. 근처에 앉아있던 관객이 숨을 훅 들이키는 소리에 기분이 좋았다”며 “‘어떤 영화가 그 사람을 찔렀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바른 말, 혹은 바르지 않은 말은 뭘까.

박 감독은 최근의 경험을 예로 들었다. 그는 “A와 B라는 인물이 10명 가량의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일이 있었다. ‘참석자들이 지적 성장을 나누는 자리’가 모임의 본질이었다”며 “B가 본인의 힘과 능력을 강조하려고 꼭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하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대화는 본질에서 멀어지고 시간이 혼탁해졌다. 나이 들면서 그런 경향이 조금씩 나타나는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최 감독은 “어떤 게 바른 말인지 정의하긴 쉽지 않지만 바른 말이 아닌 것들은 자주 목격한다. 우선 상대방의 말을 듣고 말해야 바른 말을 할 수 있다”며 “‘진정성 실전편’을 예로 든다면 말들이 다 오염돼 있었다. 페미니즘, 여성 인권, 성차별에 대해 입을 다물게 하고 싶어서 실제로는 아무 의미가 들어있지 않은 단어를 화형시킨 것”이라고, 가차없이 꼬집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