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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조병석 (3) 삐뚤어진 나의 마음에도 따스한 봄바람이 솔솔

학교 빠지며 악화된 성적과 교우 관계
급기야 동네 형들과 물건 훔치기 까지
대책 강구하던 부모님, 멀리 이사 결정

그룹 여행스케치의 리더 조병석(동그라미 안)씨가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동네마다 몇 명씩은 ‘문제아’들이 있는 것처럼, 초등학교 시절 나는 빠르게 문제아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건초더미나 마른장작 위에 휘발성 기름까지 부어서 불을 붙이면 삽시간에 불이 번져 활활 타오르듯.

담임 선생님을 향한 불만과 불편하고 불안한 옆 자리의 짝꿍. 같은 반 친구들 시선까지도 의식이 되는 상황이라 ‘땡땡이’로 일관했던 학교생활은 시험 성적도, 교우 관계도 모든 것들이 좀 먹고 곰팡이가 번지듯 흔들렸다.

1학년을 지나 2학년 3학년이 되는 동안 불량스러운 동네 형들과는 더 가까운 관계가 됐고, 급기야 ‘위험한 동행’을 하는 사이가 됐다. 심지어 이웃 마을의 마트에 여러 명이 함께 들어가서 나쁜 짓을 벌이기도 했다. 시끌벅적하게 과자나 음료들을 고르는 체하다가 다른 일행들이 주인 아주머니의 시선을 가리면 표적이 된 상품들을 몰래 주머니에 넣어 훔치는 일까지도 서슴없이 행했다.

이런 나쁜 행동들은 꼬리가 길기에 머지않아 탄로가 났다. 가까운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의 여러 수다방과 소통들 속에서 불량스러운 행동들이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던 시점, 왜소하고 숫기도 없던 나를 장손·장남으로 귀하게 여기며 애지중지 키우시던 부모님께서는 옛날 역사적인 사례를 빌려 무언가를 실천했다.

왕이 바뀌거나 나라를 새로 세울 땐 기존의 수도를 천도한 것처럼 부모님은 검고 더러운 악의 근거지에서 멀리 이사를 가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맹모삼천지교’를 감행했다. 지도의 좌표상 서울의 왼쪽 지역인 서대문구를 떠나 오른쪽 끝자락의 변두리였던 지금의 송파구 가락시장 건너편 가락동·문정동쪽 옛 지명으로는 ‘평화촌’으로 이사를 갔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등 총 2시간쯤 가야하는 먼 거리였다. 지인들은 하나도 없었다. 주변의 모든 환경들이 바뀐 낯선 상황 속에서 다시금 적응을 해야 했다.

그 당시엔 ‘평화촌’, 즉 가락동·문정동이 강동구였고, 지금처럼 강남3구로 개발이 되기 전이라 주변에는 작은 야산, 동산들과 논·밭이 많았다. 농사에 쓰일 소들과 젖을 짜내는 젖소와 돼지우리들, 여러 가지 종류의 닭들도 흔히 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

가꿔지지 않은 들녘에는 온갖 풀벌레들과 개구리 울음소리, 새들의 지저귐까지. 날마다 새로움과 신비로움을 안겨줬다. 꽁꽁 얼었던 산골짜기의 얼음조각들이 녹아 냇물이 돼 흐르듯 삐뚤어진 나의 마음 밭에도 어느새 따스한 봄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삶의 터전과 환경을 바꾸면서까지,낯선 곳으로 멀리 이사를 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부모님의 마음에 확실한 울림이 오고 결심이 선 뒤 곧바로 실행하게 된 ‘맹모삼천지교’. 지금 돌이켜보면 주님께서 이 모든 걸 다 주관하고 인도하셨음을 깨닫게 된다.

정리=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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