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동원 (3) 교회 모임 간증 계기로 법대에서 신학대로 진로 전환

우수한 성적으로 한국성서대 수석입학
유학 갈 때까지 YFC 간사로 일하며
수많은 학생들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
미국 떠나기 전 우명자 자매와 약혼

이동원 목사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인 1972년 우명자 사모와 약혼식을 하는 장면.

성경이 너무 재밌었다. 복음을 받아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10대 청소년 모임인 십대선교회(YFC)의 토요 모임에서 간증할 기회가 생겼다. 솔직히 간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간증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의 새로운 삶에 대한 시적 증언과 함께 논리적으로 말한 내용이 젊은이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선사한 것으로 보인다.

한 누님이 “미스터 리(Mr. Lee)는 연설에 은사가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힘이 있어요. 아무래도 신학을 하셔야 할 것 같아요”라고 조언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나는 자아상의 고양과 함께 신학에 대한 동경심이 자라나고 있었다. 법대를 포기하고 신학대에 진학하기로 인생 계획을 전환했다. 교단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이듬해 당시 김장환 목사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진학하던 한국성서대에서 입학시험을 봤다. 성경을 뺀 다른 과목에서 우수했던 나는 수석으로 합격했다.

그러나 이 학교는 나의 신학적 갈망을 채우진 못했다. 다만 학장이셨던 강태국 박사님의 나라 사랑, 농촌 사랑, 성경 사랑에 대한 담백한 설교는 내 영혼을 깊이 만지고 있었다. 김장환 목사님은 “미스터 리는 아무래도 유학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며 유학 갈 때까지 YFC 간사로 일할 것을 권면하셨다. YFC 간사로 여러 중·고등학교를 뛰어다니며 수많은 학생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며 큰 보람을 느꼈다.

그러다 갑자기 본격적으로 설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직 신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지만 복음이 내 안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목회자가 없는 경기도 화성의 한 감리교회에서 사역을 도와줄 수 있냐는 뜻밖의 제안을 받아 입대 전까지 사역하게 됐다. 30명 남짓한 시골교회가 1년 만에 60명 이상의 교인들로 배가되는 것을 보고 목회에 대한 미래를 꿈꾸며 헌신했다. 나의 ‘첫사랑 교회’로 지금까지도 이 교회 교우들과 교제하고 있다.

신학교 배경으로 나는 강원도 양구군의 한 이동외과병원에서 근무하는 ‘영현계’로 군 배치를 받았다. 영현계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화장하고 유골을 집까지 인도하는 업무를 한다. 군 생활을 하며 죽음을 삶 가까이에서 느꼈다. 삶의 허무함과 영혼 구원의 소중함을 더 깊이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후 주한군사고문단(KMAG)에서 통역으로 일하다 제대한 뒤 다시 수원에 돌아왔다. 김장환 목사님이 섬기는 수원중앙침례교회와 YFC, 기독봉사회 등에서 일하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사범대에서 미술을 공부한 우명자 자매와 YFC에서 인연을 맺었다. 우리는 김장환 목사님댁 정원에서 사모님이 준비하신 따뜻한 촛불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약혼식을 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허무함의 정원’에 아가의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나의 술람미, 샤론의 수선화, 골짜기의 백합화였다. 하나님 다음으로 ‘조건 없는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된 날이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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