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내들 가사 노동 가치 무려 490조… 다시 생각할 때

[김용익의 돌봄 이야기] ⑪ ‘그림자노동’은 그림자가 아니다


어려서 받은 어머니의 사랑은 누구나 잊을 수가 없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다. 필자처럼 다리가 불편해서 종종 다치는 사람은 아내의 병구완에 자주 의지한다. 한두 달은 온갖 시중을 다 들어줘야 한다. 어머니나 아내의 사랑은 이처럼 무한하고 따뜻하면서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너무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국내총생산(GDP) 같은 냉정한 지표의 계산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남자의 경제활동을 생산 노동이라고 한다. 반면 여성의 가사 노동은 재생산 노동이라고 한다. 생산 노동자들은 가사 노동자들 덕분에 먹고 쉬고 자면서 노동 능력을 재생산한다. 아이를 낳고 키워서 인구를 재생산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재생산 노동이 ‘무급’이라는 이유로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그림자노동’이 됐다.

만일 가사 노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통계청의 2019년 조사에 의하면 무급 가사 노동은 490.9조 원어치이고 GDP의 25.5% 규모다. 어마어마하다. 66.6%는 요리 세탁 등 가정 관리이고 22.1%는 가족 돌보기다. 가사 노동의 27.5%만 남성이 담당하고 72.5%는 여성 몫이다. 재생산 노동은 지금도 여성의 일이다.


그런데 1인당 연간 무급 가사 노동의 가치는 949만원에 불과하다. 월 79만원꼴이다. 이것은 무급 가사 노동의 가치를 계산할 때 유급 가사 노동의 가치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수백만원 받는 사람이라도 집에서 하는 일의 가치는 ‘파출부’와 같다는 것이다.

유급 가사 노동자의 임금은 왜 이렇게 낮게 설정돼 있을까? 흔히 가사 노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저숙련 노동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혹시? 어머니와 아내가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즉 ‘공짜로’ 해주던 일이라는 생각은 없는 것인가? 또는 예전에는 하인들이 했고 근대에는 ‘식모’들이 하던 하층 노동이라는 선입견이 깔린 것은 아닌가? 재생산 노동을 낮추어 보는 생산 노동자의 인식은 역사적 뿌리가 깊다.

정말 돌봄과 가사 노동이 이렇게 무가치한 것인지 다시 새겨봐야 할 시점이다. ‘그림자노동’이 그림자의 처지를 벗어나기 위한 길이 멀다.

(재)돌봄과미래 이사장,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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