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동원 (6) 학생들과 직장인 기초사역 통해 복음의 영향력 실감

고려병원과 한국은행 직장선교회에서
성경공부 인도하며 복음 전도에 일조

경기도 수원 산상교회 모습. 이동원 목사가 복음주의적 비전을 갖고 첫 목회를 시도한 곳이다. 산상교회 제공

유학 생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시작한 사역 가운데 직장 사역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매주 목요일 한국은행 직장선교회(FMB)에서 점심시간을 활용해 성경공부를 진행했다. 이 모임은 아마 한국 직장 사역의 효시가 아니었나 싶다. 성경공부는 당시 적지 않은 직장인들이 모여 서로 믿음을 북돋울 뿐 아니라 믿음이 없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성경과 기독교에 노출할 수 있는 복음 전도의 기회였다. 시간이 흐른 뒤 이 모임에 다녀간 인근 다른 직장인 그리스도인들이 비슷한 모임을 만들면서 직장 성경공부 모임이 퍼진 듯하다. 5년 이상 인도하다 박영선(현 남포교회 원로) 목사에게 인계했다.

당시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에서도 매주 성경공부를 인도했다. 특히 열심 있는 간호과장, 병원 임원들의 열성으로 수년간 이 모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 등 기독교 절기에는 병원장 등도 참여했다. 후일 조운해 원장님 가족이 신앙인이 되게 하는 일에도 일조했다.

아직 젊은 전도자였던 나는 두 곳의 직장 모임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직장 모임들을 인도하면서 무엇보다 평신도 사역의 중요성과 평신도 선교사 양육 비전을 체득할 수 있었다.

내가 독립적으로 책임을 맡았던 유신고 교목 사역과 산상교회 사역도 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다음세대를 대상으로 한 ‘첫사랑’ 사역으로 매주 채플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다. 다만 군인 출신의 이사장님과 세례 방식 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나는 성령의 인도를 통한 순수한 자의적 믿음의 고백 근거 위에서만 세례(침례)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번 부활절에 몇 명 세례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이사장님의 선교적 충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내 목회철학과는 맞지 않았다. 주일에 빈 곳이었던 아름다운 채플실(건축상을 받은 작품)을 인근 일반인에게 공유해 이들을 교회로 인도하며 전도할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경기도 수원 산상교회에서 고등학교 교사, 아주대 교수 등 여러 사람이 신앙인이 됐으며 이 중에서 후일 목회자나 선교사가 된 분들도 적지 않다. 이 교회에서의 사역 기간은 짧았지만 복음주의적 비전을 갖고 첫 목회를 시도한 곳으로 마음의 고향 같은 교회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유신학교나 아주대 출신들을 만나는데 이분들이 이때 믿음을 갖게 돼 하나님 나라 사역에 헌신하게 됐다는 고백을 들을 때마다 복음의 영향력을 실감한다.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이 거두게 하심을 믿는다.

학생들과 직장인을 세운 초기 사역을 회상하면서 내 마음을 설레게 한 말씀은 시편 126편 5~6절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어찌 아멘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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