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북·미 대화와 관련해 ‘미국이 좀 더 과감한 톱-다운 방식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조건이 달렸지만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쇄 입장을 내놓은만큼 이번에는 ‘미국 차례’라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정부 입장은 변동 없다’는 전제를 강조하는 한편으로 비핵화 조치가 진전되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소회’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23일 미국으로 출국해 제73회 유엔총회에 참석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청와대는 이번 총회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1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등에 대한 폐기 의향을 밝힌 것은 실무 협상을 통해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과거와는 다른 톱-다운 방식을 통해 결정이 나왔다. 미국 측에서도 과감한 톱-다운 조치가 있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이행을 위한 성의를 보이고 있으니 미국 측이 종전선언 등 이에 상응하는 동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미 국무부는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협상을 위한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더 커질 전망이다.

이 관계자는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와 관련해 “이제는 제재를 위한 제재가 아니고 비핵화를 실현하는 제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평양 회담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계 인사가 동행해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을 낳았다. 그러나 철도·도로 연결 사업에는 수십조 원으로 추산되는 비용 조달 문제에다 대북 제재가 풀려야 한다는 난제가 남아있다.

지난해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75호는 북한의 단체나 개인 사이 설립된 모든 합작회사의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북한의 자금줄을 차단하는 제재도 발효돼있다.

청와대는 북한 비핵화의 상응조치로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가 포함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관계가 국제적인 제재의 존재 때문에 한계가 있고 벽에 부딪히고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제재 관련) 기존 정부의 입장에서 변한 것은 없다”고 몸을 낮췄다. 이어 “비핵화의 구체적 조치가 실현돼 남북관계의 장애요소가 되는 제재에 긍정적 영향이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오는 27일까지 미국 뉴욕을 방문해 유엔총회에 참석한다.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참석이다. 올해 유엔총회는 총 193개 회원국 중 96개국 국가원수와 41개국 정부 수반 등 137명의 정상급 인사가 참석한다.

문 대통령은 특히 2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비핵화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평양 회담에서 전달받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공개 메시지를 토대로 비핵화 해법을 논의하게 된다. 남관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의 돌파구 마련과 남북, 북·미 관계의 선순환적 진전을 이루기 위한 실천적인 협력방안을 심도 있게 협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이 주장하는 상응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 양 정상은 회담에서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정문에도 서명한다.

문 대통령은 오는 23일 밤 뉴욕에 도착한다. 이어 24일 오전 28개국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세계 마약 문제에 대한 글로벌 행동 촉구' 행사에 참석하고, 오후부터는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문 대통령은 이후 안토니오 쿠테헤스 유엔 사무총장과 면담을 진행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지지를 요청할 계획이다. 오는 25일엔 현지 싱크탱크인 코리아소사이어티, 아이사소사이터티 대표단 등 미국 국제 문제 전문가와 여론주도층 250여명이 한곳에 모이는 간담회 자리에 참석한다.

문 대통령은 26일 오후 2시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한다. 평양 회담 결과를 중심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을 선순환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우리 정부의 비전을 설명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이외에도 스페인, 칠레 정상과도 양자회담을 갖고, 26일 오후 늦게 뉴욕을 출발해 27일 늦은 밤 귀국할 전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평양 회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아주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고 있다”며 “뉴욕 한·미 정상회담에서 무언가 실천적인 협력 방안들이 제시되고 나오지 않을까 기대된다”고 밝혔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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