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 “HS코드는 관세 징수가 목적”
산업부 차원의 실태조사 불가피
산업부 “공개는 어렵다”


일본이 7월 초 한국을 대상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종의 수출규제를 시행한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정부에서 해당 소재의 수입량 변동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수입량 변동은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한국 기업의 피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다.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힌 정부가 피해를 단적으로는 보여줄 수 있는 지표 공개에 미온적인 데에는 남 모를 사정이 있다.

국민일보가 10일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관세청의 일본 수출규제 품목 수입 현황에 따르면 일본이 7월 4일 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수출을 규제한 이후에도 해당 품목 수입은 계속됐다. 관세청 자료를 보면 일본으로부터 반도체 제조용 불화수소의 수입 물량은 지난 7월 529.85t으로 1년 전 2780.35t보다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불화수소의 8월 수입은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 3174.31t이 수입됐던 것에 비하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수출규제의 직격탄을 맞은 모양새가 지표로도 확인되는 것이다.

반면 반도체 제조용 레지스트와 회로기판용 폴리이미드 수입은 되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반도체 제조용 레지스트 수입은 올해 7월과 지난달에 각각 141.38t, 95.71t으로 전년 동월의 83.87t, 95.06t보다 증가했다. 회로기판용 폴리이미드 필름 수입도 지난해 7월과 8월 각각 16.51t, 12.58t에서 올해 23.51t(7월), 22.43t(8월)으로 늘었다.

수출규제 조치를 받는 품목의 수입이 어떻게 수출규제 전보다 늘었을까. 관계부처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는 정부가 무역거래량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상품분류 코드인 ‘HS코드(Harmonized System code)’가 세분화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 일종의 통계 착오에 가깝다.

국제협약에 따라 한국은 모든 수출입 품목에 대해 종류별로 HS코드를 지정한다. HS코드는 기본적으로 6자리로 구성돼 있다. 한국은 세부 분류를 위해 4자리를 추가해서 총 10자리의 숫자로 품목을 구별한다. 가령 반도체 제조용 레지스트의 HS코드는 3707901010이고, 반도체 제조용 불화수소의 HS코드는 2811111000, 회로기판용 폴리이미드의 HS코드는 3920999010이다.

그러나 HS코드상 같은 품목이더라도 실제 용도나 특징에 따라 다양하게 취급된다. 관세청 관계자는 “이 품목 안에서도 일본이 수출규제 대상으로 지정한 것은 극히 일부분”이라며 “HS코드는 관세 징수가 목적이다 보니 그 이상으로 품목을 세분화해서 않는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포토레지스트는 광원 파장에 따라 극자외선(EUV), 불화크립톤(KrF) 광원, 불화아르곤(ArF) 광원 등으로 세분된다. 이와 달리 관세청에서는 ‘반도체 제조용 레지스트’로만 기록한다. 일본은 EUV와 ArF 포토레지스트를 수출 규제 대상으로 정했지만, 이미 한국의 국산화가 진전된 KrF 레지스트는 수출규제 대상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즉 일본 수출규제로 EUV나 ArF 포토레지스트가 수입되지 않더라도 KrF 포토레지스트의 수입이 늘면 전체 반도체 제조용 레지스트의 수입이 증가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렇다보니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 품목의 수입 물량 변화를 정확하게 조사하기 위해서는 관세청 집계뿐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 차원의 실태조사가 더해져야만 하는 상황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소재 수입량은 해당 기업의 영업기밀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직접 조사가 아니라 기업에 문의하는 수밖에 없다. 외부에 공표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피해를 보다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도록 통관상 품목 세분화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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