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인기 댄스그룹 HOT의 콘서트는 가요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충격을 안겨줬다.팀 멤버인 문희준이 빗물에 미끄러져 부상당하자 수백 명의 소녀팬이 실신하는가 하면,부모가 HOT에 열광하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며 여고생이 자살을 했다.이런 척박한 청소년 문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이들의 음반에는 무엇이 담겼길래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탈출구 없는 청소년 문화, ‘숨통’을 터라
HOT의 열성팬인 한 소녀가 자살했다는 뉴스는 충격적이다.직접적인 동기가 어디에 있었건 그 소녀에게 HOT라는 우상은 생명과 바꿀 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그 우상의 공연 현장에서 멤버 가운데 하나가 다치자 그에 충격받은 소녀 팬 수백 명이 실신했다는 소식도 있다.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그들의 감성 구조 역시 죽은 소녀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터이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으레 이것이 ‘일부’ 청소년들의 극단적 사례일 뿐 대다수 청소년은 건전하다는 식의 언급이 등장하곤 한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이런 문제적 행위들을 끊임없이,그리고 점점 더 많이 재생산하는 사회라는 사실이다.그런 면에서 이 사건을 단지 ‘일부 청소년’의 문제로만 보는 것은 결코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다.
HOT는 현재 한국 사회의 주류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스타이다.스타에 대한 숭배는 어느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HOT의 스타성은 과거 어느 스타에 비해서도 독점적이며 팬들의 열성 또한 그만큼 맹목적이라는 데서 차이가 있다.80년대를 석권했던 슈퍼스타라는 조용필 시대에도 대중음악 문화에는 여러 개의 장르가 존재했고 각기 다른 스타일의 스타들이 공존했다.그러나 적어도 음악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지금의 10대 대중음악에는 단 하나의 음악,한가지 방식의 스타만이 존재한다.더욱이 대중음악의 주요 수용층은 이미 하이틴의 범주를 지나 초등학생을 아우르는 10대 초반으로 내려간지 오래이다.그들의 반응은 그만큼 더 광적이고 비이성적인 모습을 띨 수밖에 없으며 기성 세대와의 단절 역시 그만큼 더 깊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HOT로 대표되는 스타들이 단지 청소년 대중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소비 상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미래를 담보하는 삶의 가치 그 자체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학교에서나 사회에서 오직 하나의 가치만이 강요되는 현실에서 그로부터 소외된 많은 청소년들에게 우리 사회는 달리 대안적 가치를 제공하지 않는다.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주도면밀한 기획 하에 치밀하게 제조된 스타라는 상품뿐이다.그 화려하고 유혹적이며 자유롭고 환상적인 상품은 현실에 억눌릴 대로 억눌린 그들에게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대안적 가치로 다가오는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충격적’으로 목격하고 있는 사건들은 현재의 사회 가치와 제도,시스템이 변화하지 않는 한 끊임없이 되풀이될 문제이다.문제에 대한 대증적 처방보다 좀 더 근원적인 성찰과 진단이 요구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청소년의 획일적인 문화 환경을 좀 더 다양하고 선택 가능한 환경으로 바꾸는 일이다.청소년을 문화적 주체로서가 아니라 단지 돈벌이의 수단이며 머릿수로 환원되는 시장으로만 간주하는 대중음악 산업과 방송에 대해 우선 비판의 칼날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김창남(문화평론가·성공회대학교 교수)

< H.O.T. 의 4집 앨범>

발매도 되기 전에 선주문만 90만 장이 몰렸다는 HOT의 4집 앨범.3집에서 강타 등 일부 멤버의 자작곡을 선보였던 적이 있지만 이번 앨범에서 5명 전원이 작곡에 도전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택한 것은 모험보다 안전이다.타이틀곡으로 자작곡 대신 이제까지 이들의 곡을 써왔던 작곡가 유영진의 작품 ‘아이야(I yah!)’를 골랐기 때문.이 곡은 요즘 유행하는 하드코어 록과 클래식 샘플링을 더한 최첨단 장르다.묵직한 기타 속주와 강렬한 랩,샘플링 처리된 모차르트 교향곡 27번과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등 모든 장치가 세련됐다.거기에 ‘씨랜드 참사’를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피우지도 못한 아이들의 불꽃을 꺼버리게 누가 허락했는가/언제까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반복하고 살텐가’라는 가사의 메시지가 강렬하다.
멤버들의 대화와 독백을 그대로 담은 구성도 독특하다.‘아이야(I yah!)’ 앞에 멤버들과 아이들이 수다를 떨듯 나눈 얘기를 담고 씨랜드 참사를 보도하는 뉴스를 넣어 곡의 충격을 극대화시켰다.멤버들도 애국심을 고취하는 ‘8·15’,‘Korean Pride’,사회를 비판하는 ‘투지’,‘Pu Ha Ha’ 등 강한 톤의 곡을 써 목소리를 높혔다.
다만 음악이 공개되기 전 이들의 짙은 화장과 화려한 옷차림이 일본의 비주얼 록그룹을 따라했다는 시비가 일어 음악 자체에 대한 관심이 반감됐다.HOT가 갖는 한계는 이들이 온전히 음악 만으로 평가받지도,또 음악 만으로 승부하는 팀이 아니라는 점이다.
/권혜숙 hskwon@kukmin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