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이∼다,개그콘서트가 뉴스를 눌러서.어이∼잉”(김영철)
“닥치이라!우리들에게 코미디의 미래가 달려이∼있다.밤바야아아∼”(심현섭)
이 말만 듣고도 쿡쿡 웃음이 나온다면 당신은 10∼20대일 가능성이 높다.반면 우습다는 생각이 들지 않거나 뭐가뭔지 모르겠다면 30대 이상일 것이다.대학로의 개그 코미디를 TV로 옮겨온 ‘개그 콘서트’(KBS2·토 밤9시)에 대한 반응은 세대별로 크게 엇갈린다.
영화 CF 등 신세대들이 좋아하는 대중매체를 주 소재로 삼는데다 속도감 넘치는 진행이 특징이기 때문.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웃음의 세대를 나누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개그 콘서트’의 인기 상승세는 가파르다.7월 파이롯으로 첫방송을 내보낼 때에 비하면 시청률이 두 배 가까이 뛰었다.방송 한달 만에 도저히 넘볼 수 없을 것만 같던 ‘9시 뉴스’와 엎치락 뒤치락 시청률 접전을 벌일 정도가 됐다.‘미안합니다’나 ‘닥치라’ 같은 평범한 대사도 특유의 톤 때문에 대학가 유행어가 된지 오래다.
‘개그 콘서트’의 일취월장은 코미디에 등을 돌린 젊은 세대를 끌어당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비결은 젊은 세대에 어필하는 신선한 웃음.관객과 호흡하는 열린 콘서트 형식,1∼2분짜리 콩트 20여편이 쉴새없이 꼬리를 무는 스피디한 진행,억지 웃음을 유발하지 않는 자연스런 애드립 등이 대표적이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SBS ‘코미디 살리기’가 진부한 슬랩스틱 코미디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한달 만에 단명한 것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특히 각종 영화 드라마 광고 등 젊은세대에게 친숙한 매체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 점은 이 프로그램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지난주 방송된 ‘스승과 제자’ 같은 경우는 귀에 익은 광고 카피를 패러디한 예다.
스승 : (눈을 감은 제자에게) “무슨 냄새가 나느냐”
제자 : “낯선 남자에게서 내 여자의 향기가 납니다”
스승 : “으흠.내 너에게 몹쓸 짓을 했구나”
이밖에도 영화 ‘내 마음의 풍금’과 드라마 ‘사랑해 당신을’ 중의 인기 장면들을 비틀어 폭소를 자아내는 등 매주 나가는 20여개의 콩트중에 패러디가 3분의 2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대중매체에 익숙치 않은 기성세대라면 웃음의 진원지를 못 찾을 수 밖에 없다.게다가 생각할 틈도 없이 다음 코너로 넘어가 버리는 속도감을 쫓아가기도 버겁다.
조금이라도 식상하면 채널을 돌려버리는 젊은이들의 성향 때문에 ‘개그 콘서트’는 매주 3분의 1가량을 새로운 형식의 개그로 꾸민다.
로보캅을 성대모사로 코믹하게 패러디하는 것을 비롯해 댄스개그,팝개그,영어개그 등 갖가지 형식의 코미디 ‘종합선물세트’가 마련된다.최근에는 난장이로 분장해서 클론,박진영 등 유명가수의 춤을 흉내내는 ‘스페셜코너’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중간중간에는 난타 공연,마술쇼,가수 공연 등의 양념을 끼워넣어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새로운 웃음’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멤버들의 팀웍이 필수적이다.신인 개그맨이 많고 형식도 처음 도입하는 것이 많아 연습외에는 왕도가 없다.일단 9명의 작가와 함께 대본을 완성하면 금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밤늦은 시간까지 지옥훈련에 들어간다.
막판의 ‘앙코르 개그’나 중간중간 돌발 NG까지도 지독한 연습의 결과물이다.그렇게 해도 막상 무대에서는 썰렁한 기운이 돌 때가 없지 않아 ‘웃음 타율’이 5할대만 넘으면 성공적이라고 자평한다.
멤버들 스스로 ‘살인적’이라고 말하는 연습량에 대해 박중민PD는 “석달 준비해서 만드는 특집 프로그램을 매주 방송하는 셈이라 어쩔수 없지만 몇달 계속하면 멤버들이 쓰러질지 모른다”며 걱정이다.하지만 10여명의 신인 개그맨들은 몇 kg씩 땀을 쏟아내면서도 표정은 환하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밀려들어서도,매회 6백여 관객석을 가득채우는 관객들이 녹화 뒤에 기립박수를 치기 때문만도 아니다.타사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베테랑 선배들마저 설 무대가 사라지는 현실에서 ‘개그 콘서트’는 이들에게 하나의 축복이기 때문다.무엇보다 21세기형 코미디의 새장을 여는 프론티어로서의 자부심이야말로 순간의 인기와 바꿀 수 없는 ‘개그 콘서트’만의 선물이다.

<군기반장 ‘개그 콘서트’ 창시자 백제현>
백제현(34)은 ‘개그 콘서트’의 대들보다.후배에겐 세세한 연기까지 지도하는 ‘연습반장’이다.연습을 게을리하면 험악한(?) 표정을 짓는 ‘군기반장’이 된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이 프로그램의 창시자란 사실.
‘개그 콘서트’의 원형은 98년 그가 만든 대학로 최초의 개그 연극 ‘포유 콘서트’와 ‘게임 콘서트’이다.연극무대 형식과 콩트 릴레이는 ‘포유 콘서트’에서,‘앵콜 개그’와 중간중간에 선보이는 난타,리드믹스 등의 소재는 ‘게임 콘서트’에서 첫선을 보인 아이디어다.지난 여름께 우연히 백제현의 공연을 본 선배 개그맨 김미화가 다리를 놔준 덕에 방송으로 진출하게 됐다.
백제현에게 ‘개그 콘서트’는 방송으로의 ‘금의환향’이란 남다른 의미가 있다.구 서울예전 동아리 ‘개그클럽’ 출신인 그는 94년 KBS ‘청춘스케치’라는 프로에서 ‘외인구단’이란 코너를 맡아 ‘개그 콘서트’와 비슷한 시추에이션 콩트를 선보이면서 방송에 입문했다.이 코너가 단명하자 그는 다른 코미디 프로에서 마당쇠 등 엑스트라급을 전전하게 됐다.슬랩스틱 코미디에 회의를 느끼다가 이듬해에 방송활동을 그만둔다.대학로에서 연극 기획 등에 참가하는 등 3년간을 암중모색한 끝에 내놓은 첫작품이 혼자 기획·연출·출연한 ‘포유 콘서트’였다.평단으로부터 온전한 평가는 받지 못했지만 대박이 터졌다.3개월 전회 매진이란 기록을 세우며 대학로에 개그붐을 일으켰다.
5년만에 화려하게 방송으로 돌아온 백제현은 고정 출연 프로그램만 4개가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하지만 다른 열개 프로와 ‘개그 콘서트’ 하나를 안바꾼다고 할 정도로 이 프로에 대한 애정이 크다.단순한 코미디 프로이기 앞서 그의 땀이 흠씬 밴 분신 같아서일까.오늘도 1백kg이 넘는 거구로 허리띠를 질끈 맨 그는 후배들이 있는 연습장 곳곳을 날아다니고 있다.
/윤정훈 jhyun@kukmin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