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여는 목회자] 부산영안교회 박정근목사…침례교단 뉴리더

입력 : 1999-11-10
부산시 가야2동 150의 9 기독교한국침례회 영안교회 박정근목사(43)는 ‘교회는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목회철학을 실천하고 있다.그는 침례교단에서 가장 앞서가는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그가 추구하는 ‘살아 움직이는 교회’는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교회,평신도가 사역하는 교회,성경을 배우는 교회,선교하는 교회를 의미한다.모든 교회들이 ‘생동하는 목회’를 추구하고 있지만 박정근목사는 ‘평신도와 함께 하는 공동목회’를 통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한국교회는 목사가 선수이고 교인은 관중일 뿐입니다.그래서는 경기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목사는 감독,코치의 역할만 하고 교인이 선수가 되도록 교회의 체질을 바꿔야 합니다”
79년 침신대를 졸업하고 83년 영안교회에서 1년간 전도사로 일했던 박목사는 85년 도미,리버티 침례신학대와 달라스신학교에서 공부했다.박사과정 중에 달라스한우리침례교회를 4년간 담임했던 그는 95년 영안교회 담임으로 부임한뒤 한국교회의 변화하지 않는 풍토에 놀랐다.사회와 문화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문화를 매개로 한 복음의 전파가 가로막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교회는 생동감을 잃었고 교인들은 신앙과 생활의 괴리속에서 맴돌고 있는 것을 보았다.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교회는 죽은 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그 시대의 문화를 수용하지 못해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는다면 교회의 사명을 망각하는 일입니다”
그는 뉴밀레니엄이라는 새로운 시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교회를 기대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교회의 틀을 과감히 바꿨다.그는 교회를 세상속에 복음을 들고 나가는 운동경기에 비유,평신도가 운동선수로 뛰는 공동목회(Team Ministry)를 선언했다.또 교인들에게 전도하지 말라고 선언했다.교인들이 건강한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데 불신자를 전도해 봐야 상처만 준다는 것이 이유였다.
박목사는 이같이 선언한뒤 교회의 기초조직으로 목장을 만들었다.목장이란 12명의 교인들이 한 단위가 되어 운영되는 조직을 말한다.교인들이 목장이란 기초조직에서 서로 사랑과 교제를 하고 성경공부를 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교회를 확장해 가는 유기체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이를위해 박목사는 2년동안 목장을 이끌고 나갈 목자(평신도지도자)를 2백명 키웠다.평신도 목자에게는 사역의 전권을 부여,교인을 돌보며 심방과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했다.이렇게 한 결과,영안교회는 모든 교인들이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역동적인 교회가 됐다.박목사가 부임한 이후 교인이 두배로 늘었으며 침례교회로는 부산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했다.
박목사는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교회를 지향한다.그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지닌 최대의 위기를 ‘그리스도인의 위상상실’로 꼽는다.이 위기를 극복할수 있는 대안으로 야고보사도가 말한 것처럼 철저하게 행위가 수반된 신앙을 강조한다.그는 관념적이거나 종교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철저하게 삶이 곧 신앙이 되게 성도를 이끄는 교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박목사는 삶으로 그리스도가 살아계심을 보이는 것이야 말로 민족을 치유하는 교회의 사명임을 믿는다.이때문에 가정생활을 매우 강조한다.가정을 소홀히 하는 사람에게 교회의 직분을 절대로 맡기지 않는다.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도록 크리스마스예배는 드리지 않는다.신년예배도 드리지 않는다.대신 성탄전야예배와 송구영신예배를 알차게 드린다.
박목사는 경북 예천군 용궁면에서 5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할아버지 박기양목사(79년 소천)는 17세에 전도인으로 목회에 발을 들여놓은뒤 만주 러시아 선교에 큰 공을 세운 침례교단 초대 목사였다.일제시대 신사참배 반대로 3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예천군 박씨 집성촌에서 쫓겨나 용궁면으로 옮겨 살았다.박목사의 형제들은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4명이 목사가 됐다.형 정의(미국 볼티모어 거주),정응(서울 성서대학교수),정복(부산소망교회)을 비롯,숙부 박은호목사(개포중앙교회 은퇴)등 집안에 목사만 30명이다.
박목사는 21세기를 가정의 위기를 경험하는 사회,도덕의 혼란이 가중되는 사회,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사회,정보공유로 편리성과 공허함이 교차하는 사회,무서운 속도로 문화변화를 경험하는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이때문에 그는 21세기는 진리의 끈을 붙잡고 문화에 적절히 대응하며 절대진리를 강조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목회가 전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부산=이승한 shlee@kukminilbo.co.kr

<영안교회 자랑…평신도 성서대학 설치, 형식적 예배 과감히 탈피>
영안교회는 1964년 설립됐다.당시 성일교회를 시무하던 남용순목사와 충무로교회에 다니던 안경선집사(동아화학 회장)가 동아화학사원들을 중심으로 10여명의 침례를 받은 교인들과 함께 침례회 서면교회란 이름으로 개척했다.
초대 남용순목사는 65년 동아화학공업사 2층으로 교회를 이전하고 66년 영안교회로 이름을 바꿨다.안경선집사가 2백평의 대지를 교회에 헌납해 예배당과 사택이 마련되면서 영안교회는 성장하기 시작했다.75년 1백5평의 교육관을 헌당하고 83년에는 영안선교원을 개원한뒤 안경선집사가 헌납한 1백50평의 대지에 교회를 신축했다.
영안교회는 모든 교인들이 선교에 헌신,국내선교와 해외선교에 매우 열정적이다.규모가 작았던 75년부터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그해에 해운대침례교회를 개척하고 77년 부광침례교회,86년 경신침례교회,88년 복천침례교회,90년 갈보리침례교회,94년 서울 한샘교회를 개척했다.
보수적이었던 영안교회는 박정근목사가 부임하면서 일대 변화를 가져와 요즘은 교회에 들어서면 활력이 느껴진다.전교인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 젊은 문화를 적극 수용,믿지 않는 젊은 영혼들을 교회로 인도하는데 적극적이다.따라서 이 교회는 30,40대의 부부교인들이 많다.
영안교회는 교회내에 평신도성서대학을 설치,학점제로 운영한다.교인들이 사역의 종류에 따라 학점을 달리해 공부하며,교인들이 각자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교회는 또 형식적인 예배를 과감히 줄여 금요철야예배를 없앴다.대신 개인기도를 많이 한다.올해 표어는 ‘사랑으로 하나되어 영혼을 구하는 교회’다.교인 모두가 삶과 신앙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며 초대교회의 모습을 증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이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