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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된 갈등 폭발한 마을의 전쟁 들여다봤지요”

“누적된 갈등 폭발한 마을의 전쟁 들여다봤지요” 기사의 사진

‘마을로 간 한국전쟁’ 펴낸 박찬승 한양대 교수

“한국전쟁 때 전국의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져 상대방을 대량 학살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마을에서 누적된 갈등과 모순들이 전쟁을 계기로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죠.”

한국역사문화학회 회장을 지낸 박찬승(53)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마을로 간 한국전쟁’(돌베개)에서 마을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들여다봤다. 전쟁 발발 배경과 진행과정을 분석한 기존의 거시적 연구들과 달리 박 교수는 마을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던 학살 사건의 과정과 원인을 파헤치는 미시적 접근을 택했다.

박 교수는 한국전쟁 당시 전투나 폭격 등으로 인한 사망자 못지않게 마을 단위에서 벌어진 민간인들에 의한 학살 피해자들도 많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1952년 정부가 펴낸 ‘6·25사변 피살자 명부’에 따르면 피살자는 5만9941명으로 집계됐다. 거의 대부분이 누락됐을 것으로 보이는 좌익 쪽 피살자들까지 감안하면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로 인한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전남 진도의 현풍 곽씨 동족마을과 충남 당진군 합덕면 등 전남과 충남의 5개 지역에 대한 현장 답사와 관련자 구술 채록을 통해 전쟁 당시 마을에서 벌어졌던 학살의 실체를 찾아 나섰다.

박 교수는 주민에 의한 대량 학살이 여러 곳에서 발생한 이유를 우선 국가권력의 개입에서 찾았다.

마을 내 학살은 국가가 조직한 인민위원회나 농민위원회(좌익), 치안대나 청년단(우익) 등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주민들 간의 학살이 빈번했던 것은 이념보다는 친족이나 마을 간의 갈등, 신분 간의 알력 등 마을의 누적된 갈등 요인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주와 소작인, 양반과 평민 간에 있었던 갈등을 현명하게 풀어내지 못한 마을들은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대규모 학살에 휩쓸렸다”며 “그런 비극을 겪으면서 마을 공동체는 완전히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런 점에서 내부 갈등을 제대로 관리하고 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사회는 지역 감정과 빈부 격차 등 갈등 요인이 많은 사회입니다. 갈등 요인을 최소화하고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또다시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증언해 줄 사람들이 대부분 돌아가셨거나 고령이어서 이런 연구를 할 수 있 기간은 길어야 10년 정도”라며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좀더 활발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라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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