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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가상공간, 남과 북… 강희진 장편소설 ‘유령’

현실과 가상공간, 남과 북… 강희진 장편소설 ‘유령’ 기사의 사진

소설가 강희진(47)의 장편 ‘유령’(은행나무)은 탈북자 2만명 시대를 맞아 탈북자의 소외감과 정체성 혼돈을 사이버 공간인 리니지 게임과 연결시킨 심리극이다.

소설은 탈북자들이 주로 모이는 서울 강북의 백석공원에서 사람의 안구가 발견되는 엽기적 사건으로 막을 연다. 탈북자 정착 지원 시설인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대학까지 나온 소설 주인공 ‘나’는 남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PC방에서 여러 밤을 꼬박 지새우며 리니지 게임에 빠져 있는 게임중독자다.

“‘누구냐? 넌….’ 나는 거울을 향해 내뱉었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나온 대사다. 근데, 정말 놈이 누군지 궁금하다.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내 얼굴이 아니다. 정말, 넌 누구냐? 자세히 보니 영 모르는 얼굴은 아니다. 하림인가? 그 놈과 닮은 것도 같다.”(17쪽)

‘나’는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후 주변 탈북자들을 한 명씩 용의자로 추정해본다. 자신과 한 방을 쓰고 있는 후배 손오공, 교회 일을 보고 있는 정주 아줌마, 영화배우로 변신한 마리, 장기 매매자 달수, 과일 행상을 다니는 무산 아저씨들이 ‘나’의 주변인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현실과 사이버 공간을 넘나드는 독특한 문체다.

‘나’가 경찰서에서 자신을 취조하는 박 형사를 묘사하는 장면을 보자. “경찰서에서 썩기 아까운 인물이다. 사이버 공간에 들어가면 자기보다 어린 애송이에게 반장님이란 존칭을 쓰면서 굽실거리지 않아도 될 텐데…. 놈은 그런 좋은 세상이 있는 줄 모르는 모양이다. 영화 ‘공각기동대’의 쿠나사기에게 알리면 바로 네트의 바다로 스카우트될 것이다. 아니면 ‘매트릭스’의 모피어스에게 새로운 네오가 출현했다고 알려야 할 판이다.”(39쪽)

경찰 조사 결과 안구의 주인은 ‘회령 아저씨’로 밝혀지고 ‘나’는 리니지 게임 속 떠돌이 전사 ‘피멍’을 떠올린다. ‘피멍’은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안구를 파내거나 손가락을 잘라서 시저 제단에 바치는 잔혹한 캐릭터다.

과연 현실에서의 ‘피멍’은 누구인가.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10년 전. 북한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탈북, 남한에 정착한 정주 아줌마는 남한에서 재혼해 살던 중 죽은 줄만 알았던 전 남편을 서울에서 극적으로 만난다.

그는 탈북 과정에서 총상을 입어 손가락 두 개를 잃고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 노숙자로 연명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5년 후, 정주 아줌마는 고향을 그리워하다 백석공원에서 목을 매 자살한 전 남편의 위령제에서 회령 아저씨가 자신이 조선노동당 출신이라고 떠드는 것을 듣고 복수를 결심한다. 리니지 게임에 들어와 ‘피멍’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전사는 바로 정주 아줌마였던 것이다.

하지만 정주 아줌마의 이러한 극단적 행동이 오해와 오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삶의 비극성은 극대화된다. KBS 다큐드라마 ‘그때 그 사건’ 등의 작가로 활동한 강희진은 “나에게 소설은 내 안에 있는 우쭐대는 어릿광대의 본능을 주체할 수 없어 쏟아낸 것”이라며 “거짓말하는 순간의 쾌감, 순간에 지나지 않는 서툰 광대의 그 우쭐거림을 끝내 손에서 놓질 못했고 그 결과물이 이 소설”이라고 말했다.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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