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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노동자’ 이윤기를 추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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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글 노동자였다.” 지인들이 기억하는 소설가 이윤기(1947∼2010)에 대한 회고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77년 단편 ‘하얀 헬리콥터’로 등단한 이래 고교 중퇴라는 학력에도 불구, 독학한 영어실력으로 200여 권의 인문서와 문학작품을 국내에 번역 소개했으니 말이다. 그의 집필실을 들렀던 지인들은 일년에 두어 개씩 닳아진 펜촉을 바꿔 낀 ‘낡은 만년필’이 필통에 가득 꽂혀 있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황현산(67) 문학평론가, 정병규(66) 북 디자이너, 이남호(56) 고려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배문성(54) 시인 등이 이윤기 2주기를 맞아 그의 첫 장편 ‘하늘의 문’(열린책들)을 재출간해 헌정했다. ‘하늘의 문’이 첫 출간된 건 1994년. 조총련 간부였던 큰아버지 행방을 찾아 일본 소도시를 샅샅이 뒤지며 글과 몸으로 자신의 원류와 한 판 대결을 벌이는 이 자전 소설은 당초 3권으로 출간됐으나 이번에 1085쪽의 두툼한 1권짜리 소설로 옷을 갈아입었다.

1975년 학원사에서 함께 일한 것을 계기로 평생지기가 되었다는 황현산 평론가는 이윤기를 이렇게 기억했다. “비애가 많았고 감춘 것도 참 많았던 사람이었지요. 연좌제 집안에서 태어난 자기 상처를 가슴에 꿍쳐 두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분노를 폭발했는데 그는 고향이 경상도 군위 산골마을인지라 번역을 할 때도 소설을 쓸 때도 그 투박한 고향 말 때문에 오히려 말의 윤기가 있었지요.”

이번에 책 장정과 표제 글을 새롭게 디자인한 정병규씨는 이윤기의 폭넓은 성격에 대해 회고했다. “윤기가 백부의 행적을 찾아 일본에 갔을 때 어느 날 밤, 자기 슬픔에 못 이겨 베개로 입을 틀어막고 울었는가 하면, 그 다음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취재원인 조총련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 부르기 시합까지 했다고 하더군요. 감성이 그만큼 풍부한 사람이었지요.”

배문성 시인은 “베트남 전 참전 용사였던 이윤기가 왜 베트남에 관한 소설을 단 두 편밖에 쓰지 않았는지 궁금하다”며 “그 이유는 2005년 베트남의 한 변두리 마을을 찾아갔을 때 이윤기가 보여준 강박증세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어 그에게 들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베트남 촌로가 술을 권한다. 지금 권하는 술은 무엇인가. 화해의 술잔인가, 아니면 독배인가. 만약 독배라면 내가 35년 만에 복수의 죽음을 당하는 것인가. 그래 마시자. 설사 독배라 하더라도….”

이남호 교수는 이윤기를 ‘똥폼의 사나이’로 기억한다. 멋을 즐기기에 겉치레가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그의 지적 취향과도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독학으로 지식을 쌓은 그는 신화학이나 종교학에 관심이 많았지요. 엘리아데, 융, 캠벨의 책을 즐겨 번역했는가 하면 특히 지중해 쪽 지식을 선호했어요. 어쩌면 방외 지식인의 지식으로서는 지나치게 폼 잡는 현학이고 고고함이 아니었을까요.”

이윤기는 여러 가지 얼룩이 묻은 묘한 근대인이었다. 그 근대인의 초상이 ‘하늘의 문’에 물씬 배어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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