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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염운옥] 대처의 죽음과 99%의 영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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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세상을 떠났다. 대처의 죽음은 여론을 양극단으로 갈라놓고 있다. 캐머런 총리는 최초의 여성 총리 대처는 단순히 통치한 것이 아니라 영국을 위기에서 구했다고 칭송했다. 우파 역사가 니얼 퍼거슨은 1979년 유행하던 화끈한 펑크 록 밴드처럼 대처는 좌절한 세대에게 희망을 안겨준 구세주였다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런던시장을 지낸 노동당 정치가 캔 리빙스턴과 같은 좌파가 보기에 대처는 신자유주의의 신봉자이며, 현재의 경제위기를 배태한 장본인일 뿐이다. 필립 해먼드 국방장관과 노먼 테빗 상원의원은 트라팔가 광장에 동상을 세우자고 주장하지만, 13일 전직 광부와 학생, 사회주의자들은 이곳에서 반(反)대처 시위를 벌였다.

대처는 일부에게 나라를 구한 철의 여인일지 모르지만, 99%의 국민들에게 사랑받은 지도자는 결코 아니었다. 사랑받지 못한 정도가 아니다. 죽음 앞에서도 용서받지 못했다고 해야 맞다. 대처 집권기에 인종 소요사태가 발생했던 런던 남부 브릭스턴에서는 자발적으로 모여든 시민들이 80년대 디스코 음악을 틀어 놓고 “매기가 죽었다, 마녀가 죽었다”고 외치며 그녀의 죽음을 축하했다. 리버풀과 북아일랜드에서도 샴페인이 터졌다.

왜 이들은 노정치가의 죽음을 숙연하게 애도하지 못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대처는 갔지만 대처리즘의 유산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현재 99%의 영국민들은 민영화와 경제적 양극화, 사회적 추방이라는 대처가 남긴 신자유주의 광풍 속을 헤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대처가 영국을 망쳤기 때문에 브래스트 오프, 풀 몬티, 빌리 엘리엇 같은 개인과 공동체의 진정한 관계를 되묻는 영국 영화의 걸작들이 나올 수 있었다는 씁쓸한 역설도 가능하다. 위의 영화는 모두 대처시대 광산업 민영화로 사지로 내몰린 광부들의 파업을 소재로 하고 있지 않은가.

장례식이 거행될 세인트 폴 대성당은 2011년 가을, 런던 증권거래소 점령 시위대가 “우리는 99%”를 외치며 신자유주의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였던 장소다.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수천만 명 중에는 이주민도 많았다. 영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여전히 ‘이주민’이라 불리며 2등 시민의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 이들의 좌절과 분노가 쌓여 가고 있다. 더구나 2011년 캐머런 총리의 다문화주의 실패 선언은 문화 다양성 존중 정책으로부터 후퇴를 의미하며 그 틈새로 인종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실정이다. 새로운 인종주의는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함께 살 수 없다고 강변한다. 대처는 78년 라디오 방송에서 “다른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쇄도해 오면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며 강경한 이민배척주의를 표명했다. 대처의 연설은 문화적 인종주의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캐머런 총리의 다문화주의 실패 선언은 대처가 뿌린 씨앗의 열매에 다름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이민배척주의 말고도 대처리즘의 유산은 또 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이 ‘티나(TINA)’다. 티나는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의 머리글자다. 대처는 평소 이 말을 주문처럼 반복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말이다.

자본주의든 신자유주의든 다른 대안은 없으니 참고 견뎌라, 억울하면 출세하라. 퍼거슨 같은 역사가에게는 박력 있고 매력 넘치는 구호였는지 모르지만, 99%의 영국인들에게 이보다 더 절망적인 말이 또 있을까? 런던 광역시 의회를 해체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도크랜즈 도심 재개발을 밀어붙인 것도 대처였다. 당시 개발을 반대하던 시민단체는 대처가 ‘살해’한 공동체를 관에 넣고 모의 장례식을 치렀다. 이제 그녀의 차례다. 대처와 이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녀와 함께 티나를 고이 묻어주는 것이다. 티나의 유령이 좀비가 되어 출몰하지 않도록 단단히 말이다.

염운옥 (고려대 연구교수·역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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