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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史를 바꾼 한국교회史 20장면] (17) 한국교회와 근대음악

[한국史를 바꾼 한국교회史 20장면] (17) 한국교회와 근대음악 기사의 사진

찬송가 통해 근대음악·악기 보급… ‘음악 신세계’ 열어

“한 조선 사람이 4부 중창을 듣고 난 후 한 사람만 노래하고 나머지는 가만히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1904년 장대현교회에 한국 최초의 성가대를 조직했던 미 모우리 선교사의 고백이었다. 단선율인 전통 음악에 익숙한 일반인에게 알토 소프라노 바리톤 테너 4성부는 ‘괴로운 소리’였다. 교회 찬송가를 통해 국내에 4성부가 처음 소개됐을 때 얘기다.

한국 최초의 근대음악 교사 김인식. 한국 최초의 음악잡지 창간자 홍난파. 서울대 음대 초대 학장 현제명…. 초기 음악가들은 모두 교회에서 처음 음악을 배웠다. 선교사들이 찬송가를 통해 한국 사회에 근대음악과 악기를 보급했기 때문이다. 교회가 서양 음악을 보급함으로써 입으로만 전해지던 노래가 비로소 ‘오선지’ 옷을 입기 시작했다. 여인들이 뭇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됐다.

◇애국가 후렴 유래 배재학당=애국가(작사 미상·작곡 안익태)는 교회가 근대 음악에 끼친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885년 8월 미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의 학생들은 ‘무궁화’ 노래를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석별의 정) 곡에 맞춰 불렀다.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산고수려 동반도는 우리 본국일세/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후렴에 해당하는 ‘무궁화 ∼’는 현재 애국가 후렴과 같다. 올드 랭 사인은 1890년대 각종 기독교 찬미가집에 실려 있었다. 1910년 발간된 창가집에 졸업식 노래로 실려 대부분 학교에 일반화됐다. 애국가 가사가 기독교적 배경에서 유래한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최초의 민영일간지 독립신문이 1890년대 후반 소개한 애국가 32편 중에 11편에 기독교적 가사가 포함돼 있었다. 1896년 배재학당 학생들은 독립문 정초식에서 윤치호 작사로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사회 참여 의식이 반영된 노래였던 것이다. 개화기 찬송가 곡은 일반인이 가사를 바꿔 부른 창가 형식으로 널리 보급됐다.

◇최초의 혼성 성가대=초기 음악가들은 교회에서 주로 배출됐다. 김인식(1885∼1963)은 삼촌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그는 황성기독교청년회가 설립한 상동청년학원 중학부에서 한국 최초 음악교사로 일했다. 김인식은 음악전문교육기관인 조양구락부에서 작곡자 홍난파와 이상준 등을 키워냈다. 최초의 정규 음악가 김영환(1893∼1979)은 선교사로부터 오르간을 배웠다.

‘봉선화’ 작곡가 홍난파, ‘그집앞’ 작곡자 현제명 등 유명 음악가는 대부분 교회에서 음악에 눈떴다. 김동진, 박태현, 나운영, 장수철, 구두회, 박재훈 등의 작곡자가 교회에서 성장했다. 1948년 국내 최초로 공연된 오페라 ‘춘희’는 이유선이 기획, 1인 3역으로 출연했다. 이유선 역시 오현명 등과 함께 교회에서 처음 노래를 불렀다.

여성들은 교회 성가대를 통해 ‘무대’에 처음 섰다. 과거 유교적 전통에서 예악(禮樂)은 높은 가치로 숭상하면서도 여성이 여러 사람 앞에서 노래 부르는 일은 비천한 것으로 여겨졌다. 서울 종교교회에 본부를 둔 합창대는 남성만으로 시작해 혼성합창대로 발전했다. 한국 합창운동의 효시다. 이화학당 학생들은 1898년 12월 24일 밤 성탄절 전야 예배에서 찬송가를 불렀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짐작케 하듯 여염집에서 여성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은 ‘금기’였다. 여성이 교회 성가대에 서면서 금기는 자연스럽게 깨졌다.

◇사라진 ‘주님 앞에 감사’ 가사=최초의 찬송가집은 1892년 감리교 존스와 로드웨일러 선교사가 발행한 ‘찬미가’다. 모두 27곡이었다. 1894년에는 장로교의 언더우드 선교사가 편찬한 ‘찬양가’가 출판됐다. 오선보로 된 최초의 찬송가 117편이 실렸다. 이런 영향 속에 일반 음악도 차츰 악보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어린들의 노래도 풍성해졌다. 1947년 발행된 최초의 동요집은 박태준 박태현 박재훈 3명이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교회 음악가였다. 1938년 ‘산토끼’를 만든 이일래도 교회 성가대 지휘자였다. 1931년 발표되니 백남석 작사의 동요 ‘가을’ 중 ‘가을이라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오네’ 2절 후반부에는 ‘하나님이 내려주신 생명의 양식’이라는 가사가 있었지만 사라졌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 우리가 잘 알고 자주 따라 부르는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다. 요한학교 교사 윤춘병의 가사에 1947년 박재훈이 곡을 붙인 노래다. 사라진 3절이 있다. 3절 후반부는 ‘날마다 주님 앞에 감사 올리자/사랑의 어머님 주신 은혜를’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담겼다. 김일연 고신대 교수는 “초기 동요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가 많았는데 교과서 등에 실리는 과정에서 대부분 가사가 유실됐다”고 말했다. 서울 성내동 A교회는 매년 5월 어버이 주간에 ‘어머님 은혜’를 부른다. 하지만 교회 음악사가 잘 전해지지 않다 보니 교인들 사이에 “왜 예배 중에 찬송이 아닌 일반 노래를 부르냐”는 푸념이 나온다. 교회 음악사에 대한 연구와 보존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자문해주신 분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 △박용규 총신대 신대원 교수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 △이상규 고신대 부총장 △임희국 장로회신학대 교수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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