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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의 미디어비평]대하사극 '정도전'의 ‘8분의 전투’, 첨단영상기술이 빚은 불후의 명장면

[김경호의 미디어비평]대하사극 '정도전'의 ‘8분의 전투’, 첨단영상기술이 빚은 불후의 명장면 기사의 사진



지난 5일 밤 방영된 KBS 사극 ‘정도전’은 어느 사극에서 보기 힘들었던 ‘8분간의 전투’를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드라마 방영시간 52분 중 약 8분간 TV화면을 장식한 이성계의 도성 진입 및 개경 시가지 전투는 사극드라마 전투장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명장면 중의 하나였다.

방송시작 36분~44분까지 약 8분 동안 시청자들은 손에 땀을 쥐는 듯한 전투장면에 몰입해야 했다. ‘1388년 9월 3일 이성계의 공여군이 도성 진입을 감행했다’는 첫 내레이션으로 시작된 개경 전투장면은 기존의 사극에서 보기 어려웠던 드라마틱한 현장감이 흘러넘쳤다. 그동안 사극들이 꺼리던 여러 가지 한계를 넘어선데다 각종 첨단 영상기술이 뒷받침한 당연한 결과였다.

8분 전투장면 중 야간전투는 2분, 나머지 6분은 대낮 도성 공격과 시가지 전투에 할애됐다. 보통 사극에서 전투장면은 시청자들에게 볼거리의 중의 하나로 꼽힌다. 대하드라마 ‘정도전’은 다른 사극과 달리 전투장면이 그동안 많지는 않았다. 그런 만큼 위화도 회군 이후 리얼하게 벌어지는 도성 전투장면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은 충동을 제작진이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전투장면은 정확히 8분에 그쳤다. 역사를 바꾼 단 하루의 스토리를 더 늘어뜨리지 않으려 절제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동안 사극 전투장면은 밤에 이뤄졌다. 부족한 인원과 낮은 제작비로 인한 한계다. 그래서 ‘옛날에는 왜 밤에만 싸웠냐‘는 질문이 나올 정도였다. 한밤 전투장면은 보통 횃불과 불화살, 튕기는 화로불로 영상미학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가 있다. 적은 비용과 인원에 시달리는 PD들로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헬리캠과 레드원을 활용한 시가지 전투, 사극드라마 촬영 한계를 극복>

헬리캠을 동원한 공중촬영도 백미였다. 공여군이 사다리를 타고 도성을 넘어 시가지로 진입하는 장면을 헬리캠으로 촬영한 풀샷은 대하드라마로서 스케일과 품격을 한층 높여주었다. 공여군이 달리는 속도를 헬리캠이 따라잡으며 상공에서 팬(pan)과 틸트(tilt)를 동시 구사한 시가지 전투장면은 명품중의 명품이었다.

헬리캠이 사극에 적용되는 사례는 그다지 흔하지는 않다. 군졸 등 적은 인원에다 세트장 뒤편 등 ‘감춰야할 부분’들이 부지불식간 시청자들에게 노출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KBS2의 ‘1박2일’이나 SBS ‘런닝맨’ 등 리얼 예능프로그램, tvN의 ‘꽃보다 할배’, EBS의 ‘테마기행’ 같은 여행 또는 다큐멘터리, 일부 뉴스나 드라마에서 헬리캠이 활용되고 있다.

영화 촬영용 카메라 ‘레드원’(Red One)도 영상미를 한껏 높였다. 게다가 시가지 전투장면 연출력은 단연 돋보였다. 마을 어귀에서 골목을 지나 초가집 안쪽까지 따라붙는 디테일한 카메라워킹은 현장감을 실감나게 재연했다. 2010년 수목드라마 ‘추노’에서 첫 시도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일명 ‘추노기법’이라 불리는 레드원카메라 촬영기법은 풀HD를 넘어서는 높은 해상도로 필름 이상의 고화질을 구현했다. 액션 장면 촬영시 고속과 저속촬영을 자유자재로 구사함으로써 한편의 헐리웃 블록버스터 를 보는 듯한 시각효과를 만들어냈다.

‘정도전’은 기존 사극 촬영의 매뉴얼을 뛰어넘었다. 액션보다 창과 칼의 우선하다 과도한 오디오믹싱이나, 전투장면 늘어뜨리기. 야간전투 중심 제작의 한계를 사극도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앞서 KBS는 사극에 가장 먼저 최첨단 영상제작기술을 적용했다고 볼 수 있다. 2012년 ‘대왕의 꿈’에서 이른바 ‘매트릭스’기법을 처음 선보였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온대로 주인공이 날아오는 총알을 순간 포착해 이러저리 피하거나 공중부양하는 정지장면을 촬영하는 기법이다. ‘대왕의 꿈’에서 김유신의 칼싸움 장면도 이같은 독특한 카메라 연출기법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른바 ‘타임슬라이스’(Time Slice)기법이다. 말 그대로 ‘시간을 잘게 썰어낸다’는 뜻인데 이는 시간이 정지된 듯한 순간장면을 연출한다. KBS는 2012년 다큐멘터리 ‘글로벌 대기획, 슈퍼피쉬’에서 메콩강의 물고기를 이 기법으로 처음 촬영하는데 성공해서 당시 방송가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타임슬라이스 기법은 스틸카메라 60여대를 피사체로부터 동일한 간격을 두고 반원으로 설치한 후 동시에 셔터를 눌러 찍은 뒤 이 사진을 다시 연결하는 편집을 한다. 첨단그래픽 기술도 동원된다. 이를 통해 타임슬라이스는 입체적인 정지동작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듯한 시각효과를 낸다. 최근 SBS의 ‘별에서 온 그대’에서도 이를 활용한 ‘시간정지’의 기법을 선보였다. 주인공 도민준이 강릉의 장터와 시상식 장면에 나타나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 속을 홀로 움직이는 장면이다.

‘정도전’의 8분의 전투장면도 KBS 첨단그래픽기술이 큰 역할을 했다. 명나라 정벌 출병과 위화도 회군 과정에서 수많은 기마와 군사들의 모습도 첨단 영상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도전’은 영상제작팀의 첨단기술 지원에 힘입어 어느 사극보다 뛰어난 ‘8분간의 전투’의 명장면을 연출했다. 단순히 고풍스런 의상을 걸치고 고어(古語)를 구사한다 해서 사극이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극 매회 장면마다 PD의 의지와 정열, 작가의 창의적 스토리는 물론 최첨단 디지털영상기술이 맞물려야만 불후의 명장면이 연출되고 명품사극도 만들어진다. KBS ‘정도전’이 이를 대변해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방송문화비평가 kyung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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