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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미디어비평] 세월호가 열어놓은 ‘판도라’… 부끄러운 민낯을 되돌아볼 때

‘검은 얼굴’을 드러낸 판도라

2014년 4월 16일 진도앞바다. 넘실대는 파도에 삐죽나온 뱃머리마저 이내 바닷속으로 잠겨버렸다. 순간을 담은 TV화면은 실낯같은 우리 희망을 기어코 삼켜버렸다.

무심한 바다를 느릿느릿 오가기만 하는 구조선들.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지난 한달 내내 TV는 우리 가슴에 먹먹함과 억눌림, 급기야 분노감을 남겼다.

세월호는 무서운 블랙홀이었다. 모든 것이 빨려들어 가버렸다. 한국사회의 윤리성과 도덕성, 정의감, 공동체, 이타주의 등 우리사회를 지탱하던 모든 소중한 가치들이 그 블랙홀 안으로 흔적없이 사라졌다. 소중한 모든 것을 잃어버린 탓에 모두에게 무척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

TV를 보면 터져나오는 공허와 허탈, 그리고 분노. 밤새도록 신음한게 한두번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잔인해졌을까. 6.25전쟁 후 처음 겪어보는 심리적 대공황이다.

원시사회 수준에 머문듯한 대한민국의 민낯들을 TV를 통해 똑똑히 목격했다. 판도라 뚜겅이 열린 그 순간 설마했던 한국사회의 ‘검은 얼굴’들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가치상실을 양산해온 TV속 드라마와 예능

방송 드라마 예능을 되돌아보자. 지금까지 지향했던 최고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사람? 결코 아니었다. 비인간적 가치를 추켜세우는 가치상실의 프로그램들이 난무했다.

미디어는 사회권력체계에 대한 감시와 비판, 대안 제시를 존재이유로 한다. 객관성과 공정성, 신뢰성이 저널리즘의 생명선이다.

이를 어긴 TV방송사는 참사 이후 망신창이가 되다시피했다. KBS와 MBC는 내부 모순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고통스런 바다를 넉놓고 바라보는 희생자 가족뿐만 아니라 시청자들 가슴까지 깊은 한(恨)을 심어놓지는 않았는지......

TV방송은 속보성과 광파성, 동시성에서 매체적 우월성을 갖는다. TV가 겨누면 피할 길이 없다. 총알과 같이 목표물을 향하듯, 주사로 약물을 직접투입하듯 TV는 그렇게 강력한 효과를 갖는다. 이른바 탄환이론(彈丸理論) 또는 피하주사(皮下注射)론이다. TV가 첫 등장한 1930년 대 이후 줄곧 TV의 절대위력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미디어 강효과론이다. TV의 강효과를 너무 과장한다는 비판도 있어 왔지만 지금도 TV는 막강한 위력을 갖는다다.

지난 한달 TV방송사는 객관성, 공정성, 신뢰성을 잃었다는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 왜곡과 과장, 편파 등으로 더 이상 막장방송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절박함과 탄식들이 터져나왔다.

뒤늦게나마 기자와 PD들의 뼈아픈 자성이 잇따랐다. 더 이상 방송사의 심각한 사실왜곡과 제작파행을 굳이 재론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되짚어도 지나치지 않는 한가지 있다. 바로 인본주의(人本主義) 상실이다. 세월호 참극은 우리 사회가 이토록 반인간적 가치에 함몰되어버렸는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TV방송 프로그램도 한몫했다.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에 가치를 크게 두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좋은 TV프로그램은 공동선(善)의 가치를 끊임없이 생산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TV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 및 재생산해내는 주요한 문화생성의 주체 중의 하나다. 대중문화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며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을 지배한다.

세월호 참사는 황금만능주의에 매몰된 우리 의식을 고발한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의 연결고리를 찾아들어가면 결국 도달하는 궁극점은 인간의 탐욕이었다. 방송인들도 ‘돈이면 모든 것을 할수 있다’는 ‘천민 자본주의’ 의식을 전파하지는 않았는지 자성해야 한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비인간적인 가치에 너무 함몰돼왔다. 비단 막장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이항대립적 구도로 탐욕의 유혹을 끊임없이 재생산했다.

드라마 설정에서 신데렐라를 꿈꾸는 신분상승과 권력지향적 출세주의는 도를 넘었다. 한마디로 ‘돈이면 다된다’는 황금만능의 물질주의를 확대 재생산하는 사이 방송프로그램들이 인간중심의 가치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여전히 황금만능, 반칙, 이기주의가 판치는 드라마 예능

오늘도 지상파 채널마다 돈과 권력의 검은 거래, 난무하는 살인과 폭행, 음모와 배신, 반공동체적 행동의 드라마 장면들이 등장한다. 어느샌가 비(非)인간을 넘어 반(反)인간의 몰가치를 시청자들의 의식에 부지불식간 심어놓고 있지는 않은가.

주말예능을 보라.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게임속 반칙은 어느샌가 시청자들에게 규칙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린다. 종편을 휩쓰는 입씨름 토크쇼는 물질만능주의. 비현실적인 고부갈등과 세대갈등을 과도하게 조장한다. 나아가 그러한 몰가치를 당연한 세태변화로 기정사실화하지 않는가.

시청자들은 매일 그러한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울고 웃는다. 그 사이 부지불식간 고착화된 물질만능, 배금주의, 권력암투, 배신·보복, 가정해체, 극단적 이기주의는 드라마가 아닌 현실로 극명하게 얼굴을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에서다.

이제라도 비인간적 몰가치 내지 물질 숭배주의는 지양되어야 한다. 인간을 상품화시켜버리고 가격까지 매겨버리는 반인간적 상징들이 매일 TV화면에 등장하고 있는 현실을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다.

드라마와 예능도 휴머니즘을 강조해야

상업적 목적만을 앞세운 시청률 지상주의는 어느샌가 TV방송을 공공성을 해치는 비인간화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지는 않았는지 한번 자성해볼 일이다.

5주째 결방된 개그콘서트는 차라리 우리사회의 구조적 부조리를 고발한다. 날카로운 풍자가 미처 깨닫지 못한 일그러진 우리의 모습을 잠시 뒤돌아보게 한다. 코미디가 오히려 공익적인 프로가 되는 오늘날 현실이다.

드라마 예능도 세월호의 교훈을 한번 되새겨보자. 반칙이 선(善)이 되어서도 안된다. ‘돈이면 악마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배금주의, 생명을 서슴없이 빼앗는 잔혹한 범죄, ‘나만 잘 살면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 가족해체를 초래하는 갈등조장에 대해 방송계 스스로 자성해볼 때다. 302명의 앳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는 아무리 TV드라마·예능이라도 최소한 지켜야할 공동체적 가치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방송문화비평가 kyung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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